▲ 문재인 대표와 더민주에 대한 호남지지율이 상승국면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개혁과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반문재인' 정서가 선행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더민주 대표가 ‘정권교체를 위한 개혁’ 프레임을 가동했다. 호남권 의원이 나간 자리에는 인재영입을 통해 새 인물로 채웠다. 나아가 소장파를 중심으로 ‘뉴파티 위원회’를 출범, 당내 쇄신운동도 시작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과거 천신정 정풍운동과 같이 ‘개혁바람’으로 호남유권자들의 민심이반을 덮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반문재인 정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호남민심을 돌리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 ‘새 날’은 왔지만, 호남은 ‘진보진영의 인질’ 신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소절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한 윤상원 씨와, 그에 앞서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숨진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곡이다. 독재에 항거하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했던 ‘광주정신’의 상징물 중 하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광주와 호남, 민주화 투사들의 피를 머금고 성장해왔다.

그렇게 ‘새 날’이 왔다. 김대중 정권을 탄생시켰고, 노무현 정권 재창출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정작 광주와 호남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호남정치를 주장하는 인사들은 정풍운동이라는 미명 하에 ‘지역주의’와 ‘구태정치’로 낙인찍혔다.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에는 영남 패권주의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진보운동권’에 인질로 잡혀왔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몰표를 줬던 호남지역이 안철수 신당에 출렁이는 이유다. 최근 김욱 교수가 펴낸 ‘아주 낯선 상식’에서 설명하는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의 근원이다.

바라는 바는 명확하다. 더 이상 진보운동권의 ‘반독재, 반영남 패권주의’ 프레임에 갇혀 희생하지 말고 호남만의 정치적 이익을 향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민주화의 성지’나 ‘신의영역’에 있는 호남을 ‘인간의영역’으로 끌어내린다. 유시민 전 장관은 이를 ‘신 평민당 프로젝트’로 규정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호남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런 큰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1989년에 서울로 상경해 관악구에서 20년 넘게 자영업을 하고 있는 한 호남향후회 소속 주민의 말에서 이 같은 감정선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학생시절 광주 민주화항쟁을 직접 몸으로 겪은 세대이기도 했다.

“(더민주가) 맨날 호남호남 하지만 말 뿐이에요. 우리가 새누리당을 찍기는 어려우니까 저렇게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우리 사정 들어줄 마음 맞는 국회의원 하나 없어요. 다 운동권만 공천해버리니까. 그리고 노무현 정권에서 사법시험 없애서 이 동네 다 죽어가요. 아시잖아요.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인데...”

▲ 안철수 의원이 호남지역 지지율 고공행진을 타고 전남도당 창당에 나섰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지지율도 적지 않지만, 반문재인 정서가 기여한 바도 크다.
◇ ‘개혁’과 ‘정권교체’ 프레임은 또 ‘희생’하라는 의미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표는 또 ‘개혁’ 카드를 꺼냈다. 이철희 소장을 주축으로 양항자 전 삼성전자 상무, 기동민 전 서울시정무부시장, 금태섭 전 대변인 등 소장파가 참여한 이른바 ‘뉴파티 위원회’다. 이들은 당을 쇄신하고 정치를 혁신하기 위한 운동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뉴파티 위원회’가 과거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이 주도한 정풍운동에 비유되면서 의심스런 시각도 나오고 있다. 과거와 같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호남의 요구를 외면한 채 다시 ‘희생’을 강요하려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현역정치인이 아니고 신인들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같은 파급력은 아직까지 없다. 다만 호남민심 이반을 신인영입과 혁신으로 덮으려는 움직임에 부정적인 기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개혁’과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만으로는 호남민심을 돌릴 수 없다는 조언이 나오기도 한다. 안철수 신당의 호남지지율도 따지고 보면 ‘반문재인’ 정서 탓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천정배 의원과 같은 사죄와 반성, 미래에 대한 비전, 무엇보다 유권자와의 타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더민주 정책연구에 몸담은 한 관계자는 “70년대 영국의 노동당이 대의명분과 교조적 정의에만 매달려 ‘유권자와의 타협은 없다’고 한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은 노동당은 장기적인 침체에 접어들었다”면서 “문재인 대표의 개혁이나 정권교체 프레임만으로는 호남민심을 돌리기 어렵다. 돌을 맞더라도 적극적으로 호남의 유권자들과 만나 설명하고 그들의 요구를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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