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대전에서 만난 박응용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위원장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소리라도 질러보고 죽어야하지 않겠나”라며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사진=시사위크|대전 권정두 기자>
[시사위크|대전=권정두 기자] 지난해 12월, 또 하나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던 30대 후반의 노동자 박모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 이제 갓 꾸린 가정,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첫째아이 출산 등이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박씨의 유족은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장그래 대전충북지역 노조)와 함께 한국타이어 및 하청업체를 상대로 대전지방노동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한국타이어가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이를 은폐하고 있으니, 이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규명, 그리고 처벌을 해달라는 내용이다.

◇ 30대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됐다

지난 21일 기자와 만난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박응용 위원장 및 고발장에 이름을 올린 노동자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부터 내쉬었다.

박응용 위원장은 “나 또한 한국타이어에서 일하다 지금은 큰 병을 앓고 있다”고 운을 뗐다. 1990년대 중반 1년 6개월 남짓 한국타이어에서 일한 그는 15년 뒤 다타야수 동맥염이 발병했다. 대동맥 및 동맥혈관에 만성 염증이 생기는 다카야수 동맥염은 아직 그 원인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희귀 혈관질환이다.

박응용 위원장을 비롯해 고발장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7명이다. 지난해 숨진 박씨는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한지 2달이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이들은 고악성 활막 육종암, 알츠하이머, 뇌출혈 등의 진단을 받았다.

이들은 이러한 질병 및 사망의 원인이 한국타이어 공장에 있다고 주장한다. 작업 과정에서 벤젠, 솔벤트 등 각종 유기용제 및 중금속 등 유해화학 물질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고악성 활막 육종암 진단을 받았던 이진재 씨는 “아프기 전까지는 내가 그렇게 위험한 물질들을 취급하고 있는 줄 몰랐다”며 “아프고 나니까 내 주변이 온통 발암물질이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 주변에 있던 이 물질들 때문에 내가 아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성토했다.

박용응 위원장은 “공장 내 미세한 입자의 유해물질들이 호흡기는 물론 피부를 통해 몸에 침투하고, 이내 혈관과 뇌에 이상을 일으킨다”며 공장 내부를 촬영한 동영상을 꺼내보였다. 동영상에서는 상당한 양의 수증기, 즉 흄(미세한 고체연기)을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타이어는 고무와 각종 화학물질 등을 기계 틀에 넣고 쪄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미세한 입자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진재 씨는 “이건 그나마 환경이 좋은 곳을 찍은 것”이라며 “공장 내부가 온통 뿌옇다고 보면 되는데, 그것이 모두 발암물질인 셈이다. 마스크나 장갑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닐뿐더러 제대로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어 “환기시설이 있지만, 내부온도가 낮아질 경우 불량품이 많아져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다. 특히 겨울철엔 내부온도 유지를 위해 공장 전체를 꽁꽁 닫아버린다”고 덧붙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처럼 유해물질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수건강검진 대상자들인 이들은 건강 상 위험신호가 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채 계속 일을 해야 했다.

▲ 지난해 12월 사망한 박모 씨의 유족과 박응용 위원장, 그리고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이들이 노동지청에 제출한 고발장.
◇ 2007년 집단사망, 한국타이어는 여전히 죽음의 공장?

한국타이어 공장의 직업병 문제는 이미 10여 년 전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 2007년 10여명의 노동자가 잇따라 숨지면서 사회적문제로 대두됐고, 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 결과 숨진 노동자들의 사망원인이 작업환경과 관련 있는 것으로 결론 났다.

당시 역학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심장성 돌연사는 작업장 내 고열, 관상동맥질환은 교대작업 및 연장근무 등에 따른 과로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박응용 위원장은 당시 철저한 원인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핵심 유해물질이 배제하고 역학조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또한 원인규명 및 재발방지보단 보상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덧붙였다.

박응용 위원장은 2008년 이후에도 비슷한 환자와 사망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점이 이에 대한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수의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에서 이처럼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이토록 잠잠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한국타이어만의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애초에 산재 문제제기를 할 수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에 반할 경우 온갖 방법을 동원해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타이어는 지난 2008년 조사에서 180건의 산재 은폐가 드러났다. 또한 지난해 10월에도 지속적인 산재 은폐 주장이 제기돼 관계당국이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산재 신청 시 인사고가를 깎겠다고 협박하는 등의 구체적인 정황도 포착됐다.

이진재 씨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발암물질을 취급하다 암에 걸린 그가 산재신청을 하겠다고 하자 회사 관리자는 온갖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다. 이어 그를 둘러싼 나쁜 소문이 돌았고, 동료들은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회사를 나와야했다.

▲ 한국타이어 공장 내부. <사진=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제공>
◇ “죽기 전에 소리라도 질러보고 죽어야지”

그렇다면 타이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사람이 죽거나 병에 걸려야하는 걸까? 정답은 ‘아니’다.

각종 화학물질, 즉 발암물질들은 지속적으로 노출됐을 때 질병을 일으킨다. 환기 등 공장 내 작업환경을 철저히 관리하고, 교대 및 순환 근무로 노출시간과 빈도를 조절한다면 질병 발생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또한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꾸준히 확인하며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응용 위원장은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미 60~70년대에 문제가 제기돼 원인규명 및 재발방지 노력들이 이미 정착해있다”며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작업 환경 및 노동자들의 건강관리도 철저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한국타이어에서는 발암물질 노출을 중단해야할 노동자들이 계속 방치되다 보니 암에 걸리거나 급사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역학조사 등 명확한 원인규명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없이 보상으로 무마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환자와 사망자 발생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들의 움직임은 이제 시작이다. 노동지청 고발장 접수를 시작으로 앞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 한국타이어의 심각한 실태를 알리고, 법적 대응 등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다.

이제는 ‘전직’ 동료가 된 이들을 향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이진재 씨는 “최소한 우리가 어떤 물질에 둘러싸여서, 뭘 만지면서 일하고 있는지, 그게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간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응용 위원장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타이어를 만들며 병들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고,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국타이어 “유해물질 사용하지 않아”

한국타이어는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측의 고발에 대해 “산재 여부는 회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기관에서 판단할 문제다. 우선은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부에서 주장하는 유해물질은 현재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과거 사용했을 때에도 법적 기준치 이하로 관리했다”고 덧붙였다.

산재 은폐 의혹에 대해선 “그들의 주장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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