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시사위크] 북한의 관영 선전매체들이 최근 들어 주민의 생활을 밀착해 다룬 홍보물을 쏟아내고 있다. 김정은 시대들어 이른바 ‘인민생활 향상’이 이뤄지고 있음을 부각 선전하려는데 초점이 맞춰진 내용들이다.

북한 당국이 대외선전을 위해 만든 인터넷 사이트인 ‘조선의 오늘’은 그 선봉에 서있다. 여기에선 새로 개발한 약품을 만병통치약으로 광고한다. 맛집을 찾아 소개하는 ‘먹방’도 등장한다. 지난달 말에는 스포츠용품 브랜드인 ‘내고향’을 소개하면서 “아디다스·푸마와 경쟁하는 내고향”이라며 “수많은 ‘내고향’ 체육용품들은 그 질에 있어서 세계의 이름난 상표의 체육용품에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비롯한 매체도 한 몫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에 기여한 과학·기술자를 위해 짓도록 한 대동강변 고층 아파트 입주 소식을 전하며 ‘김정은과 노동당의 은정’임을 강조한다. TV방송의 여성 진행자가 직접 아파트를 방문하는 탐방프로를 내보내는 것도 이전과는 달라진 적극적인 모습이다. CNN을 비롯한 외신에게 이런 아파트와 평양 시내를 공개하는 건 대외선전으로 발걸음을 넓히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런 북한의 선전성 보도를 접하다보면 주민들의 삶이 이전과 확 달라지고 김정은이 민생을 챙기는 지도자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관영매체를 통해 본 북한 주민들의 삶이 우리가 생각해온 것과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평양판 ‘금수저’로 불리는 이들 특권층만을 위한 전유물이란 지적이다. 김정은 시대들어 일부 특권층을 위한 정책이 더욱 노골화 하고 있다는 얘기다.

2,400만명의 인구 중 노동당 간부나 군 고위 인사 등 핵심 인사는 6만명 정도라는 게 우리 당국의 분석이다. 이를 4인 가족 기준으로 따져보면 인구의 1%인 24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체제선전과 특권층 환심 사기 차원에서 새로 건설한 위락시설에서 여가를 즐기고, 부유층의 전유물인 골프와 승마·스키도 체험한다.

겨울철이지만 평양 문수물놀이장에서는 우리의 워터파크와 같은 실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해당화청량음료점이란 간판을 단 곳이다. 서구 패스트푸드점 분위기에 동화 속 인물 같은 복장을 갖춘 여성 의례원(판매원)이 햄버거와 치킨·핫도그 등을 팔고 있다. 서구식 식음료 문화인 이른바 ‘양풍(洋風)’이 주민 일상생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바로 옆 해당화맥줏집에서는 생맥주까지 만들어 낸다. 해당화빵집에서도 수영복 차림의 남성들이 대동강맥주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북한에도 ‘치맥(치킨+맥주)’ 문화가 상륙했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미안실(美顔室)로 불리는 방에는 여성 피부관리사에게 서비스를 받는 남성들도 눈에 띈다고 한다.

김정은의 특권층 챙기기 정점은 마식령스키장이다. 원산 인근 강원도 문천군 일대에 12개 슬로프를 가진 대형 스키장을 건설한 것이다. ‘말도 힘들어 쉬어 넘는다’는 해발 768m의 마식령(馬息嶺)에 불과 8개월 만에 스키장과 호텔을 짓느라 군인 건설자와 돌격대가 말 그대로 속도전을 벌여야 했다. 김정은은 2013년 12월 31일 준공식에서 스키도 탔다고 한다. 스위스 유학시절 즐긴 걸 떠올려 스키장을 지은 것이란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 일반 주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농사작황이 좋아져 식량난도 완화됐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하지만 북부지역인 함경도를 비롯해 지방의 경우 주민들은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기에 연초 4차 핵실험 감행 이후 연일 군중집회 등을 여는 바람에 그 어느 때보다 춥고 고단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첫 해인 2012년 4월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북한 국방비는 2013년 전체 예산 중 16%(실제로는 은닉 예산 포함 30% 선)에서 2014년엔 15.9%로 0.1%포인트 낮추는 수준에 머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재래식 무기 등 군비 지출이 핵 개발로 인해 확 줄어들었으니 인민생활로 돌리겠다던 이른바 ‘경제-핵 병진노선’이 허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북한은 남한으로부터의 대북지원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사업 관계자들은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리 대북지원 단체에 귀띔하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지원 수용이 미칠 부작용을 우려한 때문이란 것이다. 하지만 식량난에 시달리고 영양부족으로 고통 받는 임산부와 영유아, 노인 등 취약계층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닥친 올 겨울 한반도. 민족 전래의 명절인 설을 앞둔 시점이라 북녘 동포들의 고단함과 아픔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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