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가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지난 9일 일본어 웹사이트 ‘롯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www.l-seijouka.com)’에 올린 동영상 화면 캡처. 동영상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내 장남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못 박는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최근 신격호 총괄회장의 인터뷰 동영상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16분20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건재한 모습으로 등장, “내 장남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못 박는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앞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같은 내용을 언급한 바 있다.

해당 동영상을 공개한 주인공은 롯데가(家)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이다. 성년후견인(의사결정 대리인) 지정 재판을 앞둔 상황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이상설을 차단하고 경영권에 대한 정통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쩐지 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곱지 못하다.

◇ ‘16분짜리 신격호 동영상’, 신동주 전 부회장의 자충수?

해당 동영상은 지난 9일 일본어 웹사이트 ‘롯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www.l-seijouka.com)’에 올라왔다. 이 사이트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개설한 곳이다.

지난 1월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동영상은 16분20초 분량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문일답으로 구성돼 있다. 동영상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롯데그룹의 태동과 창업정신, 사업초창기의 에피소드, 직원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히 편한 모습으로 풀어낸다.

뒤이어 11일에는 ‘롯데그룹 경영 정상화를 위한 SDJ 코퍼레이션의 입장’이라는 홈페이지(www.savelotte.com)에 신격호 총괄회장이 프로바둑 기사 조치훈 9단과 함께 바둑을 두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1분 길이의 이 영상에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조치훈 9단과 ‘지금 바둑 1위가 누구냐’고 묻는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바둑을 두는 모습이 담겼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연이어 공개한 두 개의 동영상은 비록 내용은 다르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재한 모습이 담겨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두 편의 동영상을 통해 항간에 제기된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이상설을 일축하고 경영권에 대한 정통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은 동영상을 통한 여론전의 포인트를 조금 잘못 짚은 듯 하다.

앞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 3일 열린 ‘성년후견인 지정’에 대한 첫 심리에 지팡이를 짚고 직접 출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심리를 마친 뒤 소공동 롯데호텔로 이동한 신격호 총괄회장은 자신의 있는 곳을 여러차례 되묻거나, 호텔 총지배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등 ‘정신이상설’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을 재현했다.

▲ 롯데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사진 좌로부터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런 상황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동영상은 오히려 신동주 전 부회장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셈이 됐다. 신동주 전 부회장으로선 병원 감정결과 등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이상설을 잠재울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신동주 전 부회장은 경영권에 대한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쪽지’ ‘위임장’ ‘자필서명’ ‘녹취록’과 같은 여러 가지 ‘물증’들을 제시했지만, 이 같은 증거의 전제조건이 되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 문제는 동영상 외에 이렇다 할 객관적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성년후견인(의사결정 대리인) 지정 재판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의 동영상 공개는 조바심과 위기감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이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쇠약한 아버지를 앞세워 과도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곱지 않은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동영상은 ‘말 한마디’로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다는 롯데가(家)의 잘못된 후계승계 방식을 다시 한 번 확인 시켜준 꼴이 됐다. 물론 롯데그룹의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은 사실 그 상징적 의미나 실질적 영향력에서도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롯데는 경영권 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소위 ‘손가락 경영’으로 지탄을 받은 바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임원을 모아 놓고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손가락만으로 해임을 시도하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손가락 경영’으로 대변되는 황제·밀실경영의 부정적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후계자에 대한 ‘지명’은 정통성 확보에 필요하지만, ‘지명’이 곧 ‘롯데의 주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버지의 ‘입’에 매달리고 있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모습은 그동안 롯데 내에서 별다른 입지를 증명하지 못한 신동주 전 부회장의 처지를 고스란히 대변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동영상은 일본어 자막으로 구성돼 있고, 신격호 총괄회장 역시 일본어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담겼다. 물론 일본 여론을 위한 동영상이라지만, 국내는 거부감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가뜩이나 롯데가 ‘일본기업’이라는 국적논란에 휩싸인 상황에서 이 같은 동영상은 ‘득’이 될 것이 없다는 시선이 많다. 실제 해당 동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너그럽지 못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 ‘증거공개’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신동주 전 회장은 12일 동경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 소집요구를 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의 미공개 동영상과 친필서명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장남인 신동주가 후계자가 돼야 하며 신동빈이 회장(후계자)이 되면 전부 망쳐버린다”는 발언이 담겨있다.

과연, 16분짜리 동영상과 자필 서명, 위임장, 녹취록 등 그동안 신동주 전 부회장 내놓은 ‘물증’들은 어느 정도의 약발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앞으로 치열하게 전개될 롯데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 재계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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