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서 심의조치한 역대 여론조사 통계. 이 가운데 20대 총선과 관련된 조사는 46건이다. <출처=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20대 총선 공천에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한 평가지표가 되면서, 여론조사를 악용한 선거운동 사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무엇보다 선거운동이 여론조사 ‘숫자’에만 집착하면서, 정작 중요한 ‘정책’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기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의 여론조사 심의조치내역을 살펴보면, 20대 총선과 관련한 조치건수는 46건에 달했다. 이는 2014년 치러진 6·4 지방선거 당시 22건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아직 본 선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반 건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

◇ 위반 사례 46건, 6·4지방선거에 비해 2배 이상 폭증

위반 사례는 단순 누락부터 의도적인 조작이 의심되는 경우까지 다양했다. 공직선거법 108조에 따르면, 선거여론조사기준에서 정한 사항을 함께 보도하지 않을 경우, 공표가 금지된다. 일부 언론사나 조사기관 등이 조사방법과 표본오차, 응답률 등을 함께 보도하지 않거나 공심위 홈페이지에 내용을 등록하지 않은 경우가 ‘누락’에 해당한다.

충북의 한 지역구에 예비후보 등록한 최 아무개 후보는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4만5,973명에게 문자메시지로 발송해 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면서 반드시 함께 보도해야할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일종의 실수로도 볼 수 있는 ‘누락’과 달리 질문지를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구성해 공표를 금지당한 여론조사도 있었다. 경남의 한 언론사는 설문 문항에 현직국회의원의 질문순위를 맨 위에 배치하고 나머지 후보는 전국통일기호를 사용해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편향된 응답을 유도할 수 있도록 질문순서를 정한 것이 문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경기도의 박 아무개 예비 후보는 가중치 부여과정에서 ‘조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결과가 왜곡될 수 있는 방법을 적용’해 선관위로부터 경고와 함께 공표금지 처분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20~30대는 인구비율에 비해 응답수가 적고, 50~60대는 높다. 이에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결과값을 인구비율에 맞추기 위해 ‘가중치’를 곱하는 1차 가중을 한다. 그런데 이 결과에 18대 대선 투표율을 곱하는 등 추가가중을 통해 특정인에게 유리한 결과값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게 위원회의 설명이다.

심지어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특정 연령층을 표본에서 누락한 채 진행을 한 경우도 있었다. 연령층에 따라 정치철학이나 지지정당이 크게 엇갈리는 것을 감안하면, 특정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의도성이 짙다고 판단된다.

◇ 여론조사 신뢰성 치명타, 여야 ‘상향식 공천’ 갈등 ‘뇌관’

▲ 여론조사가 공천의 중요한 지표가 된 가운데, 새누리당 내 사전여론조사로 의심되는 괴문서가 유출돼 선관위가 조사에 나섰다. 일부 예비후보자들은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왜곡된 여론조사가 난립하는 것은 최근 정치권의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공천방식에 있어서 여야 모두 여론조사를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올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을 앞둔 후보들이 여론조사 결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론조사가 여론의 흐름을 확인하는 것에서 나아가, 역으로 민심에 영향을 미쳐 여론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곡된 여론조사가 보도될 경우, 민의를 왜곡하거나 호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새누리당의 한 선거캠프 관계자는 “여론을 확인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결과값을 만드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정책대결은 찾아보기 힘들고 일부 캠프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홍보물을 만드는 것이 더 중시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중앙선관위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여론조사 중 일부에 대해 특별조사 방침을 밝혔다. 아울러 여론조사 관련 신고나 제보 포상금을 최대 5억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왜곡·불법 여론조사 근절에 나섰다.

그럼에도 지난 3일 새누리당 지역구별 사전여론조사로 의심되는 괴문서가 돌아다니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선관위가 조사에 착수했으나, 당내 예비후보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계파간 책임공방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여론조사를 통한 경선에 불복하는 상황까지 점치는 등 신뢰성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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