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민주평통 자문위원
-前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사위크] 1941년 12월 7~8일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과 필리핀에 있는 미국의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태평양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대동아공영권’ 확보라는 일본 군국주의의 대전략때문이었다. 군국주의자들은 국가전략 달성을 위해 필연적으로 서구 열강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태평양 전쟁의 원인으로 미국의 대일본 경제봉쇄만을 주장한다. 악명 높은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 전시돼있는 태평양 전쟁의 원인에는 미국의 대일 경제 제재만 잔뜩 나열돼있다. 이것은 분명 사실과 다르다.

일본은 1940년 7월 8일, 미국 등 서방이 그렇게도 반대한 인도차이나를 침공했다. 이때 일본은 돌아올 수 없는 지점(Point of no return)을 지나고 말았다. 화가 난 미국은 대일 석유 금수 등 다양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비롯한 일본 해군 수뇌부는 “경제제재를 통해 죽으나 전쟁을 하다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인식 하에 1941년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는 우를 범하기에 이른다. 잠자는 사자의 콧수염을 건드린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 군부의 정세인식이었다. 일본은 인도차이나반도 공격에 대한 주변국들의 반대는 망각하고, 침략 결과로 취해진 자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해서만 불만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을 택했다.

지금 북핵문제와 관련해 연상해 보면 북한은 주변국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4차에 걸친 핵실험을 한 사실은 정당한 것이고, 그 결과로 인한 대북 제재만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인데 그 이유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인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UN안보리를 비롯해 한국, 미국, 일본 등은 강력한 대북 경제제재를 실시하고 있다. 대북 경제 ‘융단 폭격’ 정도다.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북한의 핵실험 이후 결의된 UN 안보리 제재는 ‘솜방망이’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중국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제3국 효과’라는 것으로서 경제제재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유관국들 모두가 빈틈없는 봉쇄를 취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국가가 하나라도 있으면 제재 효과는 별로 없게 된다.

그동안 북-중간에는 밀무역, 차명·가명계좌 사용, 현금 거래, 형식적 검색, 화교들의 활동 등이 묵인됐다. 이로 인해 북한은 제재당하는 입장임에도 경제성장까지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태도는 단호한 것 같다. 첫째 이유는 시진핑 주석의 분노다. 시진핑 정권은 2013년부터 본격 출범했다. 이 시기 김정은은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을 시행한 바 있다. 시진핑 주석은 분노했고, 김정은과는 일체 접촉하지 하지 않은 대신 박근혜 대통령과만 6회의 정상회담을 하는 것으로 앙갚음했다. 황금평 개발사업, 나진선봉 개발사업 등도 지지부진했다. 물론 여기에는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도 일조했다.

시진핑은 현재 내부적으로는 군부, 경제까지 장악해 사실상 ‘시황제’의 지위에 올라 있다. 이러한 ‘시황제’에게 ‘하룻강아지’인 김정은이 계속 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중국은 ‘김정은 길들이기’ 차원에서 대북 제재를 ‘죽지 않을 만큼’ 까지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유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의 남한 배치 반대를 위해서다. 사드 배치는 중국의 미사일 운용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만일 한국에 사드가 배치돼 중국 북경지역까지 탐지가 가능하게 된다면 중국의 대미 군사전략은 대폭 수정돼야 한다. 중국으로서는 턱밑에 비수가 들이대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사드 배치가 중국의 최대 약점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사드 카드를 통해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이 과거처럼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고 형식적으로 임할 경우 언제든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술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중국의 대북 제재가 실효를 거두기 시작한다면 북한이 버텨내기 힘들 것이다. 김정은 통치자금 고갈은 물론 생필품 부족으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는 날로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의 민생경제 살리기 전략 역시 큰 차질을 빚을 것이다. 제재가 장기화된다면 대량 아사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남한과 서방세계가 기대하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주민들의 항의도 일어날 수가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중대한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올 수밖에 없다. 과연 그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처럼 이판사판식으로 전쟁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적절한 타협책을 내놓을 것인가?

현재까지의 김정은 태도는 강경일변도다. 핵탄두의 소형화 공개, 미사일탄두의 대기권 진입 실험, 고체연료사용 실험, 사거리 200km인 300mm 방사포 실험, 청와대 직접 타격 위협 등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카드가 다 나왔다. 김정은은 당장이라도 전쟁을 하겠다는 태도다.

물론 이것은 그 동안 실시된 김정은 참수 및 북한 본토점령 한미훈련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도 있고, 그저 ‘말폭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북한은 언젠가는 미국과의 일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국주의자들처럼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특히 김정은은 일본군국주의자들처럼 자신의 잘못보다는 경제제재의 가혹성만을 인지해 더욱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다. 다만 이 선택은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어서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의 1차 선제공격이 성공하더라도 미국의 2차 타격에 의해 북한 수뇌부가 소멸될 것이고, 북한은 3차 타격할 여력이 없어진다. 그 후의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다음으로 김정은이 드라마틱하게 협상카드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고, 승산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김정은 자신이 잘 알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은 대북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핵동결’을 카드화해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중국도 원하는 바이기 때문에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핵 비핵화’를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이 ‘핵동결’을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지만 미국도 마냥 이것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서 북핵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 없는 한에서는 그 유용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대화 재개 시기는 남한의 4월 총선거 이후이자 북한의 7차 당대회가 개최되는 5월 7일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의 5차 핵실험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북한의 일본 군국주의식 전쟁 선택을 막아야 한다. 물론 현재 북한이 1940년대의 군국주의 일본과 비교될 만큼 강대국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도 ‘자살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따라서 대북 제재가 북한으로 하여금 일본 군국주의자들처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선택을 강요할 정도까지는 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현재보다 진전된 협상카드를 들고 나오면 우리는 그것을 수용해야 한다. 그것 자체가 제재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제2의’ 한국 전쟁은 북한이 승리하든 남한과 미국이 승리하든 그것은 민족이 공멸하는 ‘무가치한 승리’가 될 것이다. 미국은 국가이익 차원에서 이란 및 쿠바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각각 1년 이상 비밀접촉을 했다. 우리는 왜 이런 외교를 못하는 것일까? 의지 부족인가? 능력 부족인가? 평화통일보다 더 큰 국가이익이 있을까?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