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시사위크] 유승민 의원의 복당 문제로 불거진 새누리당의 권력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총선 참패 이후의 자숙 분위기도 권력투쟁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해 4월8일 원내대표 연설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을 강조했던 그의 연설은 19대 국회 최고의 명연설로 꼽힌다. 그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이 연설로 인해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낙인이 찍혔고, 이후 새누리당은 극우 ‘친박’과 중도보수 ‘비박’의 민망한 권력투쟁으로 날을 지샜다.

유 의원은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 연설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공천 면접 과정에서는 새누리당은 당헌 위배 여부를 따졌다고 한다. 당시 조원진 의원은 “헌법보다 인간관계”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른바 ‘진박’들의 상당수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헌법적 가치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천 과정에서 ‘조폭 같은 언어들’이 ‘최소한의 민주주의 절차’를 압도했고 결국 그들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20대 국회 시작과 함께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연합뉴스 전수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83%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한다. 새누리당 의원의 77%,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87%, 국민의당 의원의 92%가 개헌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다른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70% 가량도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재점화한 개헌 논의가 여야의 울타리를 넘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개헌의 방향에 대한 생각은 제각각이다. 정치권은 주로 권력구조 개편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즉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책임제 등 각각이 처한 조건과 이해관계에 따라 백가쟁명식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협소한 논의만으로 개헌을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현대적 의미의 헌법 정신을 실현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즉 개헌 문제를 권력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다루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세계는 아찔한 속도로 변화한다. 4차산업혁명이 몰고올 혁명적 대변화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다보스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은 10년 뒤면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200만개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로봇이 대체할 일자리는 부지기수고 새로 만들어질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다.

인구절벽, 이자율 제로 시대로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매우 빠르게 중산층 붕괴 현상을 초래한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복합불황의 악순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개헌 논의의 방향이 정치권의 미래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 국민의 미래로 향해야 하는 까닭이다. 절박한 시간이다. 권력분립만을 다루는 근대적 의미의 헌법 논의는 그야말로 거대한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권력분립 문제만 하더라도 권력구조 차원이 아니라 강력한 지방분권 문제를 공론화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남경필 지사와 이재명 시장의 문제제기는 각도는 다르지만 지방분권 강화라는 시대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이번 개헌 논쟁에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사회적 시장경제의 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통일한국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4차산업혁명 시대의 기본권과 노동은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등 현대적 의미의 헌법적 어젠다가 꼭 포함되어야 한다.

개헌 논의를 여야나 진보, 보수의 울타리에 가두면 실현되기 어렵다. 블랙홀을 넘어설 플랫폼이 필요하다. 미래를 위한 절박한 논의에 각계 전문가를 비롯한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개헌을 위한 7공화국 플랫폼’을 설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헌은 ‘빨리’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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