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시사위크]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최근 들어 오빠의 통치활동을 적극 보좌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어 관심을 끈다. 노동당의 핵심 직위를 차근차근 차지해 나가는 건 물론이고 각종 ‘국가급’ 행사에 얼굴을 드러내며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양 권력층들 사이에서는 “만사여통 세상이다. 모든 길은 여정 동지로 통한다”는 말까지 나돈다고 한다. 김정은의 관심이나 신임을 받으려면 김여정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10대 시절 스위스에서 함께 유학하며 다진 끈끈한 우애가 김여정을 평양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올 들어 김여정이 자신의 존재감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낸 건 지난 5월 초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7차대회다. 김정은이 ‘노동당 위원장’으로 등극하며 집권 5년 만에 최고지도자의 확보한 반열에 올라선 이 행사를 기획하고 연출한 게 바로 김여정인 것으로 우리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당시 평양시 환영대회가 열린 행사 본부석에 스마트폰과 수첩을 들고 총괄하던 김여정의 모습이 외신기자의 망원렌즈에 포착되기도 했다.

당국자는 “김일성 시절부터 선전선동의 귀재로 불려온 김기남 노동당 정무국 부위원장(전 당 비서)이 하던 방식과는 상당히 달라진 선전선동 방식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과거 최고지도자의 이미지 연출이나 선전선동 작업을 펼칠 경우 극도로 통제되고 절제된 패턴을 보였다.

하지만 5월 당 대회 때는 미국 CNN이나 영국 BBC외에 일본과 서방 언론 등 100여명의 외신을 불러들이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김여정이 해외유학을 하며 서방 문물을 접했기 때문에 이들 언론에 대한 인지도가 있었을 것이란 진단이다. 또 평양에서도 김정은 관련 해외언론 보도를 꼼꼼히 챙겼을 김여정이 당 대회를 계기로 오빠를 국제사회에 띄우기 위한 공격적인 연출 작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노동당의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여정은 차관급 직책을 훨씬 뛰어넘는 권세를 누리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의 주민들에 대한 김정은 우상화 선전이나 체제 관련 대내외 보도를 통제·조정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핵심 부서다. 부부장 자리에 앉아있지만 김여정의 기세를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통’인데다, 오빠 김정은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사실상의 최고 실세라는 점에서다. 2011년 12월 김정일 장례식 때 눈물을 짓고 있던 과거의 김여정이 아니란 말도 나온다.

김여정이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6월 29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 김여정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자리한 단상이 아닌 회의장 객석 3~4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앞서 하루 전 참석자들이 평양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방문한 사실을 북한 관영매체들이 보도했는데, 여기에도 김여정이 등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녀가 2014년 3월 선거 때 명단에 없었다는 점에서 보선 등의 형식으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다.

김여정이 오빠 김정은과 강원도 원산 특각에서 정기적인 통치모임을 갖는다는 첩보도 있다. 권력 내부의 주요 의사결정에서 김여정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휴양을 겸해 이 곳에 모인 뒤 노동당과 군부, 대외정책 등과 관련한 주요 사안을 보고 받고 결정한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파악내용이다. 김정은의 동해안 지역 군부대·공장 방문이나 휴양에 맞춰 일정이 잡힌다고 한다.

원산 지역은 이들 남매의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인 생모 고영희가 처음 북한 땅에 도착한 곳이 원산이다. 또 고영희가 한때 ‘원산댁’이라 불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곳은 김정은과 남매들에게 인연이 각별한 지역이다. 김정은이 원산 비행장을 국제비행장으로 리모델링하고 인근에 마식령 스키장을 건설한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국무위원장에 선출된 이후 첫 공개 활동에 나선 지난 3일, 김여정이 등장하는 기록영화를 내보냈다. 6월 초 소년단 창립 행사에 나온 김정은이 받은 꽃다발을 김여정이 챙기는 장면이다. 공개석상에 자주 등장하는 편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을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7세인 김여정은 아직 업무에서 완숙미를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의 역할에 맞먹는 존재감을 갖게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 여동생 김경희는 오빠의 권력을 보좌하고 통치활동을 챙기는 핵심 업무를 관장했다.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으로 정치적 생명이 사실상 끝나 은둔생활에 들어간 김경희를 대신할 존재로 김여정이 자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보 당국자는 “일각에서는 김정은 유고시 후계1순위가 형 정철이 아닌 여동생 여정이란 첩보도 흘러나온다”고 귀띔했다. 김정철은 건강이상 등으로 후계 자리를 동생에게 내준 바 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진 3대 세습의 고리를 이어갈 혈통을 지닌 사실상의 유일한 대안으로 김여정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거침없는 그녀의 향후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외부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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