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고, 마음이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꼭 맞기 때문이다.”

장자 '달생편(達生編)'에 나오는 말이야. 구두나 운동화가 발에 딱 맞으면 신발을 신고 있다는 걸 잊고, 허리띠가 허리에 잘 맞으면 허리띠를 매고 있다는 걸 잊고, 누구든 서로 마음이 잘 통하면 옳고 그름을 놓고 논쟁할 생각이 없어진다는 뜻일세. 하지만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있어도 없는 것처럼 잊고 지내는 경지에 이르는 게 쉬운 건 아니지.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하는 걸 보면 위태롭게 보일 때가 많네. 자주 사랑을 확인하려고 들지. 상대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지 자꾸 확인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서로의 관계에 대해 확신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거지. 상호신뢰가 부족하니 불안해서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해주길 바라는 건 아닐까? 우리 젊었을 때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말 자주 하지 못했지. 남세스러워서 그러기도 했지만, 그런 말 자주 안 해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그런 말 자주 해주지 않는다고 시비하는 사람이 오히려 놀림을 당하거나 이상하게 여겨졌지. 어디를 가든 항상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으니까.
 
난 친구와 우정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자꾸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친구야. 그런 믿음이 없다면 우정이 오래 지속될 수 없지. 지난 며칠 동안 40여 년 전에 대학에서 만나 함께 내 생의 삼분의 이이상을 동고동락했던 친구들과 경북 봉화에 있는 청량산에 다녀왔네. 지난 40여 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산에 가고 연말 모임과 애경사에 부부가 동반하여 참석하기도 하는 친구들과 함께 한 여름휴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지.
 
고향도 다르고 사는 처지도 다른 사람들이 대학에서 만나 어떻게 우리들처럼 오랫동안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그건 우리들 관계가 이해타산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관계였기 때문에 가능했었을 거라고 생각하네. 가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어린이 같은 철없는 행동을 해도 허물을 나무라지 않고 받아들여주는 관대함이 우리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야. 그런 관대함은 친구들 모두가 술과 가무를 좋아해서 생긴 마음의 여유 덕분일지도 모르고. 인디언 말로 친구는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지.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60살이 넘어서도 육친의 정 이상의 친근감을 유지하고 있는 걸세.
 
그런 친구들 중 한 명이 지난 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네. 어려서부터 술과 담배를 너무 사랑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탈이 난 거지. 작년 8월에 강원도 오대산의 선재길을 함께 걸으며 계곡에서 물장난을 치며 놀았던 친구가 9월에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한 거야. 꽃 피는 봄날에 그를 먼저 보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지금도 그 친구만 생각하면 한숨과 눈물이 나오네.
 
5월에 그 친구를 보낸 후 남은 친구들은 사진을 찍기로 결심했지. 지난 40여 년 동안 나에게 많은 삶의 보람과 기쁨을 주었던 친구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오래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야. 그래서 지난 6월부터 남은 8명의 친구들을 찍기 시작했어. 오랫동안 함께 한 친구들이라 카메라에 담기 쉬울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더군. 너무 많이 알아서 더 어렵다고나 할까? 그래서 더 잘 담기 위해서 인물사진 수업도 듣기 시작했고. 9월 말까지 찍은 친구들 사진으로 10월에 인사동에서 있을 예정인 달팽이사진골방 긴걸음반 사진 전에 참여할 거야. 요즘처럼 찌는 듯한 삼복더위에 친구들 얼굴 사진 찍는 게 쉽지 않지만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 걸 행운으로 여기며 즐겁게 작업하고 있지. 하루 24시간 친구들 얼굴만 떠올리며 살아.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조용필의 <친구여>를 사진작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네. 노래방에 가면 그들 앞에서 열창하는 이른바 내 십팔번이야.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옛일이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린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가 조용히 눈을 감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합께 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외부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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