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동곤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이 아우디와 폭스바겐 위조 인증서류(샘플)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정치권 핫이슈로 떠올랐다. 옥시와 폭스바겐 등 다국적 기업들의 이른바 ‘무책임 경영’이 단초를 제공했다. 이들 다국적 기업은 국내에서 높은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소비자의 건강이나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등 무책임한 경영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먼저 배출가스 시험성적서를 조작한 것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아우디·폭스바겐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9월 미국 환경보호청은 아우디·폭스바겐의 차량 배출가스 불법조작이 있었음을 밝혔고, 이는 우리나라에 판매된 차량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미국 연방환경청(EPA)과 캘리포니아 환경청(CARB) 등은 리콜명령을 비롯해 과징금 부과, 소비자 배보상을 명했다. 아우디·폭스바겐이 지출할 배출가스 불법조작 수습비용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만 100억 달러(약 11조6000억)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 폭스바겐의 국내 부당이익 매출액 2조2800억, 과징금은 고작 178억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는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폭스바겐이 제시한 리콜계획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불승인 결정을 내렸으나, 교체나 환불 등 실질적인 명령은 내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22일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폭스바겐이 미국에서는 자동차를 지난해 9월 기준 중고가격으로 환불해주고 추가적으로 현금 5100~1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며 “이는 미국 환경당국의 요구로 가능했다. 그런데 우리 환경부는 폭스바겐의 리콜방안을 기각하면서, 미국 환경당국처럼 환불명령이나 교체명령은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환경부의 솜방망이 처벌은 관련법이 부실하다는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실제 대기환경보전법 50조 7항에는 ‘교체’는 규정돼 있으나 ‘환불’은 빠져있다. 더구나 동법 56조 과징금 규정을 보면 과징금 부과액은 최대 매출액의 100분의 3 미만, 최대 100억원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더민주 강병원 의원에 따르면, 폭스바겐이 시험성적서 조작으로 국내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얻은 매출액은 2조2800억 원이다. 기업입장에서 과징금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더민주 강병원 의원은 규제를 강화한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환경부 장관이 내릴 수 있는 명령의 범위를 현행 ‘차량교체’에서 ‘환불 및 재구매’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과징금의 범위를 매출액의 100분의 20으로 상향조정하고 과징금 액수 100억 제한 규정은 개정안에서 삭제했다.

법안을 발의한 강 의원은 “기억의 불법행위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고 다른 국가와의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더는 폭스바겐과 같은 부도덕한 기업이 소비자와 국민을 우롱하고 대기환경의 막대한 오염과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배상 정책과 사후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등 단체들이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특위의 영국 방문 방해한 옥시레킷벤키저 규탄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 과세 사각지대 다국적 IT기업…영국의 옥시 본사는 국정조사 비협조

환경문제를 일으킨 폭스바겐뿐만 아니라 구글 등 다국적 정보기술(IT)업체도 규제대상이다. 이들 다국적 IT기업들은 국내에 진출해 막대한 저작권 수익을 얻으면서도 관련법 미비로 과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들이 법인이 아닌 유한회사 형태로 국내에 진출한 경우, 회계감사 의무도 면제돼 정확한 소득 파악이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은 과세 대상인 비거주자의 국내원천소득에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물의 저작권’을 추가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아울러 비상장 거대기업이나 일정요건을 만족하는 유한회사는 회계법인의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 개정안도 마련했다. 배 의원 측 관계자는 “다국적 IT기업들의 국내소득에 대해 과세를 강화하는 법안은 이미 마련됐다”며 “조만간 정식으로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옥시래킷벤키저는 다국적 기업의 특수성에 터잡아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옥시뿐 아니라 SK케미칼과 이마트 등 여러 기업이 연관된 문제다. 다만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국내기업과 달리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는 국회 국정조사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국회 가습기 국정조사 특위 위원들에 따르면, 영국 래킷벤키저는 한국의 옥시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이중기준 정책을 취해왔다.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던 가습기 살균제가 유럽의 살생제품 관리지침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한국판매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또한 본사가 살균제에 들어간 PHMG의 독성을 이미 2004년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심도 있다.

따라서 특위위원들은 영국 현장조사를 통해 사실관계 확인과 사과를 받으려 했으나, 래킷벤키저는 공개사과를 거부했고 현장조사도 비공개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다국적 기업의 배째라식 대응에 가습기 국정조사와 청문회 이후 이 같은 횡포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까지 후속대책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홍익표·금태섭·신창현 등 야당소속 가습기특위위원 8인은 공동성명을 내고 “영국 정부의 불분명한 태도에 유감을 표한다”며 “우리는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피해자 및 유가족의 아픔을 고려하여, 남은 국정조사 활동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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