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시사위크] ‘폭력 제로’의 시민항쟁이 계속된다. 지금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것은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도 아니고 국민들이다. 대통령이 산산조각 낸 권력을 모아 떠받치고 있는 것도, 의회가 계산하느라 정지시킨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 것도 국민들이다. 외국에서 ‘무당 공화국’이라 조롱받으며 사정없이 떨어져 내린 국격을 광장의 함성으로 다시 세우고 있는 것도 국민들이다.

11월의 시민혁명은 유례없는 위대함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교과서에서 보지 못했던 창의적인 항쟁이 이어진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송두리째 파괴된 이 국가시스템의 벽돌을 다시 쌓고 있다. 시위가 끝난 뒤 청소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이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부패로 망가진 대한민국과 100만 촛불의 위대한 항거가 동시에 기억된다. 파괴와 건설의 동거, 수치와 자존의 동거, 불의와 정의의 동거가 지금 대한민국의 역동성이다. 소셜 미디어가 국민의 마음을 연결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파, 재벌이 혼연일체가 된 국가파괴행위는 모든 국민들에게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되묻는다. ‘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은 이 나라가 공화정인지 왕정인지를 질문한다. 19일 집회 때부터 들리기 시작한 ‘재벌도 공범’이라는 슬로건은 이 사건의 배후와 그 규모가 간단치 않음을 암시한다. 대통령은 당장 내려와 감옥으로 가야 하지만, 거기가 끝이 아닐 것이라는 자각이 대중 속에서 싹튼다.

국민들은 시위현장에 나와 극적인 순간을 경험한다. 개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스스로가 어떤 존재임을 되묻고 국가와의 관계에서 주권자임을 선언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성(humanity)은 삶과 존재 자체를 내던져 공공 영역으로의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에 의해서만 달성된다”고 말한다. 모든 국민들이 지금 인간성을 향한 긴 여정에 나섰다. 분노와 불안과 수치심을 감당한 채 이 사회의 불의를 고발하고 정의로운 길을 갈 것을 간곡히 주문한다.

그러므로 이 광장의 권력은 섬세하고 준엄하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정치적 층위는 아주 다르고 삶의 방식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정의의 총체적 붕괴 앞에 이들은 한마음이 됐다. 섬세한 차이와 통일된 힘이 공존한다. 그들은 사생활을 보류하고, 주말을 반납하고 광장에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헌신한다. 박근혜-최순실 일파의 부패와 불의를 엄단하라는 요구를 목청껏 외친다. 박근혜 퇴진 함성의 파도타기 위용은 이미 세계시민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모두에게 광장은 아주 새로운 경험이고 거친 여정이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100만 촛불의 평화적인 함성은 국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분노와 불안과 스트레스는 그 연대감으로 인해 승화된다. 설교보다는 공감이, 논리보다는 함성이 중요하다. 우리가 더욱 더 사건을 정확히 규정하고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시위의 과정은 사건의 본질에 한걸음씩 더 다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사건의 본질이 박근혜-최순실 일당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세력이 더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세월호 7시간, 삼성의 국민연금 농단사건 등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과 노후에 직접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게이트를 헌법파괴사건, 국기문란사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범죄사실이 수백 가지 공개됐다. 검찰도 대통령 공모사실을 적시했다. 검찰의 1차 수사발표는 뇌물죄와 국가기밀 누설죄가 빠졌고 재벌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부족하다.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피의자로 만들었다고 해서 만족할 일이 아니다. 이 상태면 피의자들은 기껏해야 2년~10년 정도의 형량을 받게 된다. 그것으로 국민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대통령은 심지어 검찰수사를 거부했다. 중요한 안보외교를 강행한다. 나아가 범죄사실을 은폐하고 증거인멸을 위한 청와대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헌법적 질서의 허점을 노리고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내란이다. 비영리단체 나눔문화는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 사건을 ‘사설-비밀정부에 의한 국가내란’으로 규정했다. 피의자가 수사를 거부하고 청와대를 점거한 것은 또 어떤가? 내란인가, 아닌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 질문을 지금 포기해서는 안 된다. 검찰은 당연히 청와대 압수수색과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를 단행해야 한다. 내란이라면 긴급체포해 형사소추를 해야 한다.

시민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용기를 타성의 틀에 가두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하야, 탄핵소추, 형사소추의 모든 가능성을 열고 싸워야 한다. 최소한의 승리를 통해 시민혁명의 역사를 아로새겨야 한다. 반드시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한다. 나아가 이를 최대한의 승리로 이어가야 한다. 단순히 대통령 바꾸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11월의 시민혁명은 그 모든 가능성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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