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겸 칼럼니스트
일 년에 단 두 번만 문이 열리는 곳, 경북 영천 팔공산 은해사의 부속암자 백흥암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이다. 2013년 6월에 개봉된 영화 ‘길 위에서’ 이창재 감독은 영운스님을 비롯한 비구니 스님들의 300일간의 사찰살림을 담담하게 그려내어 커다란 감동을 선사해 준 적이 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푸른 눈의 티베트 승려 텐진 파모 스님은 “한국 비구니 승단은 교육 시스템, 수행법 등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는 세계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고 감탄했다. 로마 가톨릭에서도 영국성공회에서도 여성 사제조차 나오지 않았다.

세계 불교국가 대부분 비구니 법맥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여성 출가자의 수의 급감은 물론 대부분 비구니 사찰은 운영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팔경법(八敬法)이라 해서 100세가 된 비구니(여승)라도 새로 계를 받은 비구(남승)를 보면 일어나 맞이하고 3배를 하라는 불평등 계율도 따라야 한다.

우리 불교 역사에서 비구니 승가가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심지어 역사는 비구니들을 기록조차 하지 않았고, 그들 스스로도 세상에 오르내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지난 6월 하춘생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사찰경영과정 주임교수가 〈붓다의 제자 비구니〉를 내놨다. 한국불교기자협회 회장·한국종교언론인협의회 대표의장 등을 역임했던 하 교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칭송한 비구니 제자부터 한국불교 전래와 첫 여성 출가, 우리 역사에 기록된 비구니 스님들을 세세히 책에 조명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랐던 현존하는 11개 비구니 문중을 49개 사찰과 암자를 들어 그 인연들을 소개했다.

하 교수는 이 책은 “구도와 교화현장에서 열정을 불사르며 전법·수행과 교육·복지·문화에 이르기까지 비구니들이 보여주고 있는 역동성과 생명성에 한국불교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희구(希求)를 담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는 사각지대로서 불교 교단을 위시한 종교계가 지목되고 있는 현실이 얼마만큼 부조리한지를 깊게 인식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성평등에서 선진적인 우리나라에서 오직 종교에서는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 종교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불교에서도 비구니가 차별 받는 일들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 붓다의 제자 비구니.
비구니 스님들에게서 출가는 도피가 아닌 구도(求道)의 길이다.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수행자로서 대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은 ‘비구, 비구니가 따로 없으며, 치열한 수행정진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알려준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기에 우리 종교계 특히 불교계의 그림자를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책임에 틀림이 없다.

책 표지에 보이는 화운사 삼장원에서 주지 선일스님의 사진을 비롯한 모든 사진들은 불교계 최고의 사진작가 가운데 한 분인 장명확 작가의 작품들이다. 하 교수와 장 작가의 콜라보레이션이 아름다워 더욱 빛나는 책이다. 이 책을 낸 국제문화재단 전홍덕 이사장은 내년에 영어판도 보급한다고 하니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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