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정의당 이정미 의원과 금속노조가 한국타이어의 산재 은폐 행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시사위크DB>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한국타이어가 ‘죽음의 공장’이라는 오명을 쉽게 벗지 못할 모양새다. 정유년 새해를 맞은지 두 달여 만에 또 다시 근로자가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지만, 돌연사라는 소식에 벌써부터 '2007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 2007년 ‘집단 돌연사’… 그로부터 9년 후

46명. 2008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망한 한국타이어 근로자 수다. 한 해에 6 명꼴로 죽어나간 셈이다. 이는 퇴사자까지 포함한 통계이기는 하나, 이들의 죽음 역시 회사생활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15일 김종훈 의원(무소속)실 자료에 따르면 사인 대부분이 오랜 시간 누적된 결과인 뇌종양이나 폐렴, 암과 같은 질병으로 나타나서다.

업계에서 이 같은 수치는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다는 분위기다. 한국타이어에서 근로자가 사망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전·금산공장, 중앙연구소 등에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93명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2006년부터 2007년 한 해 동안 15명이 돌연사해 한국타이어는 ‘죽음의 공장’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이듬해 한국타이어를 대상으로 정부는 대대적인 역학조사와 관리감독을 실시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산재를 은폐(183건)하고 관련법을 위반(1394건)한 사실을 적발했을 뿐이었다. 돌연사의 원인으로 작업장 내 고열과 근로자의 과로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일각에서 제기한 타이어 생산과정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고무 흄(고체연기)과 관련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관계 기관의 조사가 용두사미에 그치면서 8년 동안 또다시 46명의 소중한 생명이 한국타이어 근로자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것이다.

한국타이어의 죽음의 행렬은 올해에도 계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유년 새해가 밝은지 두 달도 안돼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서다. 지난 12일 새벽시간 이 회사 대전공장 정련 sub 1팀 직원 이모(50)씨가 일터 인근 식당에서 갑작스레 숨졌다. 이씨의 안타까운 소식은 사고 발생 이틀 후인 14일 한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 산재협의회 “숨진 이씨, 지병 없던 건강한 사람”

현재까지 이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13일 부검을 마쳤으나 부검 결과 공개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이씨를 부검한 을지대 병원 의료진으로부터 한 달 후에나 결과가 나온다는 의견을 전달받았다는 게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응용 위원장은 “2007년 이후 공식적으로 돌연사한 근로자가 또 다시 나왔다. 사람이 의자에 앉은 채로 갑자기 사망하게 되는 건 심정지가 아니고서는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약간의 당뇨 증세만 있을 뿐 별다른 질병이 없던 이씨가 돌연사 한 건 유해한 환경에 20년 넘게 노출됐던 탓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이씨는 숨지기 하루 전인 11일 오후 2시까지 공장에서 근무했다. 퇴근 후 대덕구 덕암동 식당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다음날인 12일 새벽 1시40분경 숨졌다. 이씨가 23년간 몸 담아온 정련과란 타이어 제조 작업의 첫 번째 단계인 천연고무와 합성고무 등을 한데 버무리는 일을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벤젠, 자이렌 등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한편 23년간 근속해 온 직원의 사망 소식과 관련해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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