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주 스토리 아티스트
컴퓨터가 없던 시절, 복잡한 수학 공식을 계산하는 사람들을 ‘Computing’ 부서로 불렀다. 이 부서가 훗날 컴퓨터라는 기계로 대체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기계가 들어오기 전, 19세기 후반부터 주로 여성들이 ‘인간 컴퓨터’로서 이 부서에서 계산을 담당했다고 한다.

꼼꼼하고 정확하게 계산을 할 수 있으면서도 남성보다 더 안 좋은 조건에서도 일하겠다던 여성들은 천문학이나 공학 쪽에서 ‘인간 컴퓨터’로 일할 수 있었다. 그중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보다도 더 적은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NASA에서는 서쪽 분관에 그들을 모아두고 ‘West Computers(서쪽 컴퓨터들)’이라고 불렀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NASA의 서쪽 컴퓨터였던 흑인 여성 중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그리고 메리 잭슨, 이 세 명에게 집중하여 그들이 겪었던 차별과 이에 대항하는 모습을 그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지만 2시간 내외로 맞춰야 하는 만큼, 영화는 등장인물 수를 줄이고 극적인 연출을 위해 몇몇 장면을 바꾸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두지 않은 완벽히 허구적인 내용이 하나 있다. 캐서린 존슨이 본관에서 백인들과 일하게 되었을 때 영화는 그녀가 흑인 전용 화장실을 쓰기 위해 매번 서쪽 분관까지 달리는 장면을 길게 묘사한다. 그 후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백인 상사가 화장실 표지판을 부숴버리며 일이 해결되는데 아쉽게도 이 부분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캐서린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백인 여성들이 불만을 토로해도 가까운 (백인 전용) 화장실을 이용했고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때까지 불만들을 무시하였다고 한다. 영화와 달리 그녀에게 차별에 분노하며 ‘흑인 전용’ 표지판을 부숴준 사람은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영화가 ‘결국에는 백인 남성의 도움을 받은’ 이야기로 만든 게 아니냐는 비평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영화 자체가 백인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흑인 여성의 이야기로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백인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맡은 일을 다 할 수 있게 불편함을 개선하고, 잘하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작은 각색은 흑인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던 백인들을 돌아보면서 ‘그때 이렇게 도왔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메시지를 주며 화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사람과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차별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다. 영화를 보면서 차별을 방관하고 당연시하는 사람과 차별에 대항하고, 이를 바꾸려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멋있는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김연주 스토리 아티스트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학과졸업
Acadmey of Art University (AAU) 스토리보드과 석사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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