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겸 칼럼니스트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45-14”을 아시나요? 구주소로 수송동 46-15번지이다. 그 자리에 송암미술관이 있다. 이곳은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일컬어지는 고 이회림 동양제철화학그룹 명예회장의 자택이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청량한 목탁소리를 듣기도 쉽고 침향을 능가하는 삼보정재인 스님들의 맑은 향기가 보기 쉬운, 예전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장소에 있었을 것이다.

1977년 군산에서 청구목재를 운영할 때 여공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개설한 청구여중은 우리나라 산업체 부설학교의 효시가 되었다. 아울러 평생 수집한 문화재 8,400여점과 미술관 일체를 인천시에 기증하였을 뿐 아니라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범 김구선생의 동상을 인천대공원에 건립해준 고마운 인물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새롭게 내부단장을 한 OCI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주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경복궁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인왕산 북악산을 바라보고 산책을 한다. 동십자각 사거리를 건너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아름다운 소녀상 지킴이들을 지나 조계사 경내에 들어간다. 탑돌이를 하며 ‘불교 개혁과 정화’를 염원하며 불교와 스님들을 걱정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예전에는 촛불시위를 바라보며 ‘지난 정권’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픔이 컸었다. 이런 실망과 고통으로 마음은 한없이 아파해도 이 부근에서는 괜찮다. 왜냐하면 그럴 때는 바로 OCI미술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치유가 다 되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와 동행들을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은 OCI미술관이 참으로 고맙다.

▲ 《그 집》전시포스터
얼마 전 서윤희 초대작가의 ‘기억의 간격’도 그러했다. 지금은 松巖 탄신 10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송암의 사저 터에 건립된 송암회관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개조한 OCI미술관의 이야기’로 ‘미술관이 된 집, 그 집으로의 초대’ 즉 《그 집》이 다음날 7월 1일까지 개최되고 있다. 어쩌면 OCI미술관이 개관한 2010년부터 ‘그집’은 이미 송암의 사저가 아니라 고서화, 도자, 북한 유화 등 OCI미술관의 소장품과 ‘OCI Young Creatives’ &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선정 작가 중 8명의 최근작으로 지어낸 상상의 집이기도 하다.

1층에서 입구 프롤로그 벽으로 나아가는 광경은 종로에서 돈화문로를 지나 창덕궁 뒤의 북악산과 멀리 보이는 북한산을 한꺼번에 바라보는 중후하면서 쾌청한 느낌이다. 1층부터 마지막 3층까지 전시장의 계단을 한 층씩 올라가는 느낌은 돈화문을 지나 인정전이 아닌 비원으로 향하는 숙장문을 지나 이방자 여사와 덕혜옹주가 머물렀던 낙선재와 수강재로 궁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보살피던 덕혜옹주가 세상을 버린 지 10일만인 1989년 4월 30일 이국땅 구중궁궐 속에서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가 바라본 것은 무엇일까? 이번 전시 1층 ‘그곳’에서 보이는 궁 안으로 들어오기전의 바깥세상과 같았을 것이다. 개성 출신의 화가 우청황성하의 10폭 산수화를 중심으로, 박종호, 유근택, 이현호, 임택, 허수영의 현대미술가가 바라보는 하늘, 숲과 산, 호수의 풍광을 담았다. 더불어 OCI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500여 점의 북한유화 중 공훈예술가 한상익이 그린 금강산 풍경 ‘삼선암에서’를 선보인다.

과거에 장원급제한 선비가 돈화문을 들어서는 순간 궁 앞에 가득한 ‘상궁, 나인, 무수리’ 등 미인의 모습에 입이 딱 벌어졌을까? 송암의 출신지이자 인삼의 도시 송도 즉 개성의 기생은 어떠했을까? 전시장 2층 ‘그 집’에서 전은희와 정재호는 오래된 집을 그리고 거리를 만들고, 양정욱의 ‘어느 가게를 위한 간판’을 세워 보았다. 거기에 석지채용신의 ‘팔도미인도’와 이우성의 ‘outdoor painting’으로 사람이 북적이게 하였다. 또, 그 집의 물건도 꺼냈다. 책가도와 도자를, 여기에 홍정욱의 작품과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탁자를 함께 배치하여 세간을 갖추었다.

▲ (사진 좌측부터 시계방향) 한상익 삼선암에서 1986 / 석지 채용신 팔도미인도 20c초 / 허수영 양산동04 2013 / 그집 Installation view 3F 박성훈.
낙선재가 그랬듯이 송암의 사저 3층 ‘그 방’은 정말 자신과 가족들만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박경종은 ‘시공간 나그네’에서 과거 송암이 사용하던 붓, 지팡이, 골프채 등과 현대의 일상용품이 작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뒤섞여 흥미로운 시공간을 빚어낸다. 대뜸 송암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먼저 가서 한층씩 내려오는 것도 관람의 순서를 역행하며 해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그 집》은 벽돌 쌓듯 차곡차곡 모아온 시간과 정성, 인연으로 만들어낸 집이다. OCI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과감하게,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의 시대 구분을 짓지 않았다. 미술품이 주는 즐거움과 상상의 기쁨은 시간에 국한될 수 없기에, 게다가 대(代)를 이어 아름다움을 감상하라고 송암이 내어준 ‘집’이기 때문이다. 형제자매 많은 대가족처럼 작품들이 저마다 마주치며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번 전시는, OCI미술관이 관람객에게 보내는 ‘그 집으로의 초대’이다.

아직까지 OCI미술관에 가서 실망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래 줄 것을 기대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꼭 가봐야 할 미술관이고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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