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장하성 펀드로부터 부적절한 내부거래 지적을 받았던 벽산그룹 오너일가가 여전히 내부거래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분야에서 ‘공정’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재계가 분주한 모습이다.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문제 요소를 서둘러 해소하고 있다. 자칫 새 정부 눈 밖에 나 ‘본보기’가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각종 불공정행위는 비단 극히 일부 재벌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견기업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꼼수’가 성행하고 있다. 단지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고, 대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을 뿐이다. 오너일가 이익 극대화 및 부의 대물림을 위해 불공정행위가 동원된다는 것은 같다.

◇ 장하성 펀드 타깃이었던 벽산그룹, 계속되는 내부거래

벽산그룹은 과거 18개 계열사를 영위하며 30대 재벌에 속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하지만 IMF를 겪으며 줄어든 덩치는 2014년 벽산건설 파산으로 더욱 왜소해졌다. 이제는 벽산, 벽산페인트, 하츠, 그리고 벽산LTC엔터프라이즈 등 4개의 계열사만 남는 상태다.

주목할 곳은 벽산LTC엔터프라이즈다. 김희철 전 벽산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성식 벽산 사장과 차남 김찬식 부사장, 그리고 이들의 자녀 3명이 지분을 20%씩 나눠 갖고 있다. 자녀들의 경우 아직 10대에 불과한 이들도 있다. 벽산LTC엔터프라이즈는 오너일가 개인회사인 셈이다.

2010년 설립된 벽산엘티씨엔터프라이즈는 철물 및 난방장치 도매업을 사업분야로 삼고 있다. 문제는 매출의 대부분을 계열사를 통해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총 매출액 339억원 중 320억원이 벽산, 벽산페인트, 하츠 등을 통해 올린 것이었다. 무려 94%가 넘는다.

이는 비단 지난해만의 일이 아니다. 설립 첫해인 2010년 내부거래 비중도 94%를 넘겼다. 이어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77%, 83%를 기록하더니 2013년부터 2013년까지 94%, 96%, 95%의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사실상 모든 매출을 계열사를 통해 올리고 있는, 오너일가 개인회사다.

내부거래 의존도가 절대적인 벽산엘티씨엔터프라이즈는 벽산 지분 4.96%를 갖고 있기도 하다. 김희철 회장에 이은 2대 주주다. 향후 3·4세 승계 과정에서 벽산엘티씨엔터프라이즈에게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계자들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이를 통해 승계에 필요한 자금 및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전형적인 ‘꼼수’에 해당한다.

이처럼 벽산엘티씨엔터프라이즈는 새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내부거래와 편법승계에 모두 얽혀있는 모습이다. 물론 이런 문제를 지닌 곳은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그런데 벽산그룹에 유독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가 있다.

새 정부 들어 임명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과거 한국 기업들의 적절치 못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소액주주운동에 나선 바 있다. 이른바 ‘장하성 펀드’다. 이 펀드를 통해 문제적 기업의 지분을 매입한 뒤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벽산그룹 오너일가는 당시 ‘장하성 펀드’의 레이더망에 걸린 곳 중 하나였다. 벽산건설 지분 5.4%를 취득한 장하성 펀드는 벽산건설과 계열사 인화의 내부거래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장하성 펀드의 요구사항과 사외이사 및 감사 추천, 회계장부 열람 요청 등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분의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어쨌든 벽산건설은 파산했다. 하지만 장하성 펀드가 지적했던 벽산건설과 인화의 내부거래는 벽산엘티씨엔터프라이즈의 내부거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즉, 벽산그룹 오너일가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내부거래를 활용해오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소액주주운동을 하며 벽산그룹 오너일가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장하성 실장과 김상조 위원장이 정책을 결정 및 실행하는 권한을 쥐게 된 것이다. 벽산그룹이 새 정부를 맞아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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