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제도가 실효를 보려면 제도적·구조적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법정관리를 받은 모 조선기업의 한적한 부두.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기업회생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회생절차 뿐 아니라 구조조정 등 보다 근본적인 노력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은행은 4일 패스트트랙 기업회생절차와 기업의 실제 회생수준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최영준 한국은행 미시제도연구실 연구위원의 논문을 요약·소개했다. 신속한 기업회생절차 진행을 위해 도입된 패스트트랙 기업회생제도는 법원이 기업회생개시를 결정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회생계획을 인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사대상은 2016년 10월 말 기준 법정관리 대상이었던 1,483개 기업이었으며 2000년부터 2015년까지의 자료가 사용됐다. 회생 개시일자부터 회생계획 인가일까지의 기간이 6개월 이하였던 기업들과 그렇지 않은 법정관리 기업들을 대조해 연구가 진행됐다. 또한 패스트트랙 제도가 도입된 2011년 4월 이전 자료와 이후 자료도 구분됐다.

조사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기업회생절차가 빠르게 진행됐는가와 기업의 회생척도로 간주되는 이자보상비율 개선의 상관관계는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신뢰수준인 90%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는 뜻이다.

최영준 연구위원은 패스트트랙의 효력이 옅은 이유를 제도 바깥에서 찾았다. 법정관리를 마친 기업도 관리대상으로 선정됐던 이력 때문에 낮은 신용등급을 받는 ‘낙인효과’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추정이다. 회생신청을 한 기업은 대출금리와 규모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거래 상대기업 또한 보다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패스트트랙 제도를 통해 신속하게 법정관리를 마쳤다 해도 기업의 영업기반이 흔들린다면 정상적인 금융·상거래를 하기 어렵다.

업종별 산업경쟁력의 차이도 기업회생절차의 실효성에 영향을 미쳤다. 산업분류별로 이뤄진 개별조사에서 화학 산업은 패스트트랙 제도를 통해 긍정적인 회생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신뢰수준 90%). 한국 화학 산업은 경제적 규모와 산업단지 집적수준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철강·조선 산업은 기업회생절차의 효과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철강 산업은 전 세계적 공급과잉현상이 지속되고 국내 경쟁이 심화되면서 법정관리 후에도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수주 급감 등 무역 침체의 여파로 중소형 조선사 대부분이 폐업 또는 법정관리를 경험한 조선 산업은 경영여건 회복에 어려움이 지속돼 패스트트랙 제도의 영향력이 유의미하게 나타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됐다.

최영준 연구위원은 기업회생절차 제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낮은 신용등급과 높은 위험 프리미엄 등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낙인효과를 제한하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철강·조선 등 산업의 경쟁력 자체가 약화된 경우에는 기업회생절차 진행과 함께 사업재편 등 구조조정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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