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동안 닫혀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입이 다시 열렸다. 지난 2~3일, 그의 재판 중 피고인 신문을 통해서다. 온 국민 앞에서 입을 열었던 지난해 12월 국회청문회로부터 8개월여 만이다.

그의 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회 청문회 때처럼,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대통령으로부터 승마지원과 관련해 질책을 듣고 이를 삼성 수뇌부에 전달했을 뿐, 삼성이 최순실에게 건넨 각종 자금은 ‘모르는 일’이란 것이다. 또 ‘뇌물의 대가’ 중 하나로 지목되는 국민연금의 삼성합병 지원에 대해서도 합병과 승계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현재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상 이해가 쉽지 않은 해명이다. 국민들의 일반 상식에서도 벗어나 있다. 일각에선 ‘재판 전술’이란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 진술의 신빙성이나 모순, 재판 전술 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임원들의 말을 믿어보자.

국내 최고 기업이자 세계적으로도 위상이 높은 기업 삼성의 3세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 그는 아버지 외 다른 사람에겐 야단을 맞아본 적 없이, 특히 여자에게선 싫은 소리를 들어본 적 없이 살아왔다. 그러다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레이저 눈빛’과 호된 질책을 받아 당황했고, 이를 삼성 임원들에게 전달했다.

이후 삼성 임원들은 이재용 부회장 모르게, 누군지도 잘 모르는 최순실을 적극 지원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임원들이 수백억대 자금을 불법적인 곳에 쓰는데도 전혀 알지 못했다. 리더십이나 내부 통제력은 하나도 없었다.

삼성에서도 최고 엘리트가 모인 것으로 알려진 미래전략실은 최소한의 도덕적 감수성도 없었고, 부당한 압박에 대항할 용기도 없었다.

또한 삼성이란 거대 기업은 신문에도 나온 최순실의 존재를 모를 정도로 정보력이 없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수백억을 건넸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 그리고 임원들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모습과도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들에게 향했던 선망과 존경, 찬사는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갈 곳을 잃었다.

만약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임원들의 이러한 진술이 모두 받아들여지고, 무죄가 내려진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의 무능함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국민적 분노와 허탈함은 차치하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에서 만나는 삼성 간판에 환호하고, 외국인들의 삼성 칭찬에 기뻐하고, 삼성 제품을 쓰는 것이 애국이라 여겼던 국민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저지른 뒤 진정한 반성과 이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고, 그런 모습을 응원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임원들의 말을 참으로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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