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제주시 모 영농조합법인 저장창고에 살충제 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된 '08광명농장' 생산분 계란 8,460개가 회수돼 폐기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살충제 계란’의 공포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식재료인 계란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사태는 초동 대응에 실패한 정부가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이면서 확산되는 양상이다.

살충제 계란 파문이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면서 기업들의 불안감도 가중되고 있다. 계란을 취급하는 산업마다 행여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잔뜩 몸을 움츠린 분위기다. 논란의 불씨를 잠재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계란 공급을 중단하는 업체들이 있는가 하면, 계란 사용이 필수인 제빵‧분유‧제과 업체들은 자사 제품의 안전성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 ‘친환경 계란’도 안전한 먹거리 아니다

정부와 기업들이 살충제 계란 파동을 잠재우기 위한 안간힘에도 소비자들의 불신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적합’ 판정을 받은 계란에 대해 대형마트들이 판매 재개에 들어갔지만, 판매율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판매 재개 하루 뒤인 지난 17일 이마트와 롯데마트‧홈플러스에서의 계란 판매량은 전주 대비 50~60% 가까이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살충제 계란 파문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논란의 중심이 일반 계란에서 친환경 계란으로 옮겨갈 조짐이다.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 친환경 계란에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등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잇따르면서 소비자들의 배신감이 커지고 있다.

18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살충제 계란 농가 49곳 가운데 63% 가량인 31곳이 친환경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농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환경 농장은 어떤 살충제도 사용해선 안 된다.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로 정부의 친환경 농수산물 관리 실태와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형국이다.

친환경 계란의 안전성이 도마에 오르면서 친환경 농산물을 취급하는 유명기업들도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고정된 고객층을 보유하고 있는 친환경 브랜드들은 이번 사태로 충성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살충제 성분 불검출 판정을 받은 거래처 농장들의 명단까지 공개하며 제품의 안전성을 대외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대표적인 친환경 농수산 브랜드인 풀무원의 ‘올가’와 대상의 ‘초록마을’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사가 취급하는 계란에 문제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총 6종류의 유정란을 판매하고 있는 올가는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계약 농장에서만 생산된 계란을 공급하고 있으며, 화학 살충제 농약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초록마을도 사태 확산 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12곳 거래 농장의 현황과 함께 정부의 실효 채취 결과를 모두 외부에 공개하고 있다. 초록마을은 “당사에서 취급하는 모든 계란은 구조적으로 기생충 발생이 어려운 평평한 땅에 모래와 쌀겨 등을 깔아 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 ‘적합’ 판정 거래 농가 공개… 소비자 불신은 여전

전국 470여개 매장을 둔 초록마을은 대상그룹의 친환경 브랜드다. 재계의 유력 여성 CEO인 임세령(30.17%), 임상민(20.31%) 자매가 각각 2, 3대 주주로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규모는 2,340억원 가량이며 영업이익은 42억원에 이른다.

최근 급성장 중인 프리미엄 식자재 마켓인 ‘마켓컬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3종의 계란이 안전성 적합 판정을 받았다며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더파머스의 마켓컬리는 골드만삭스와 맥킨지 근무 경험이 있는 이슬아 대표가 2대 주주(27.6%)인 곳으로 회사 설립 3년 만에 연매출 2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업체들의 노력에도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이들 업체들은 현재 계란 판매율에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위험요소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조사의 신뢰성에 금이 가고 있어서다. 당초 두 달로 계획했던 정부의 전수조사가 3일 만에 끝나 부실 시비에 휘말렸으며, 일각에선 무작위 샘플 채취가 아닌 농장에서 준비된 표본을 검사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실제 이런 흐름을 반영한 듯 한 ‘맘 카페’ 회원은 “대형농장에서 전혀 약을 쓰지 않고 농작물을 재배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라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유기농가에서도 어느 정도의 약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시중에 판매되는 유기농 제품을 믿지 못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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