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 참석하는 김현종 한국 통상교섭본부장과 마이클 비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한미 FTA 재협상을 논의한 첫 번째 회담이 지난 22일 서울에서 열렸다. 미국이 늘어난 무역적자를 강조한 반면 한국은 양국이 모두 자유무역의 수혜를 입었다고 주장해 양측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렸다. 외신들은 미국의 일곱 번째 교역국인 한국과의 무역조건을 점검하며 미국의 통상정책 현황을 살폈다.

◇ 쉽지 않은 점수 매기기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한미FTA가 발효 5주년을 맞은 지난 4월 양국의 경제성과를 분석한 기사를 발표했다. 발효 당시 미국의 제조업계는 더 많은 일자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었지만, 이코노미스트는 “5년 동안 미국의 승리감은 불안으로 바뀌었다”고 썼다. 블룸버그의 22일(현지시각) 기사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2016년 한국과의 무역에서 277억달러의 적자를 냈다고 추산했으며, 이는 FTA 발효 전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반면 상호수혜를 주장한 한국의 논지 또한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코노미스트는 FTA 발효기간 동안 감소한 양국의 교역량은 협정이 아니라 악화됐던 세계무역환경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으며, 2016년에 한국이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금액을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는 자료도 제시했다. 동기간 한국의 미국에 대한 서비스산업 수입도 두 배 이상, 냉동소고기 수입은 152% 증가했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양국이 모두 동의하는 FTA 재협상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을 제시했다. 디지털 교역과 전자상거래 등 5년간 시장규모가 확대된 교역분야를 개정안에 반영해 한미 간 무역규모를 높이는 방안이 제안됐다.

◇ 제 발목 잡은 트럼프 행정부의 양자주의

소위 ‘공정무역’에 대한 미국의 열의는 비단 한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내는 세계 여러 국가들과 무역협정문을 다시 쓰는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은 한미FTA보다 한 발 앞서 시작됐으며 또 다른 무역흑자국인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상도 논의시점과 방식에 대해 각계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 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무역여건 개선을 대표정책으로 내걸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지지층은 관세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백인 제조업 노동자들이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무역전문가 필립 레비 교수는 CNN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무역 분야에 대한 공약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허풍에 심취한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촌평도 덧붙였다.

그러나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무역규제를 통한 산업경쟁력 제고’ 약속은 아직까지 가시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철강·알루미늄 산업에 대한 무역조사가 당초 예상보다 두 달이 늦어진 현재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예시다. CNN은 22일(현지시각) ‘트럼프는 왜 무역부문에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는가’ 제하 기사를 통해 미국 행정부의 무역환경 개선노력을 가로막은 요인을 탐색했다.

지난 7월 이뤄진 월스트리트저널과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가 실마리로 제시됐다. 당시 철강 산업에 대한 관세부과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건강보험과 세제개혁, 그리고 어쩌면 인프라투자 문제까지 결론지은 이후로 미뤄둘 것이다”고 대답했다. 대선과정에서 선전한 바와는 달리 트럼프 행정부가 인식하는 무역문제의 중요성은 자국 내 주요 쟁점들보다는 떨어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미국 의회는 ‘오바마케어’의 존폐를 위시한 건강보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세금과 인프라는 아직 논의조차 시작되지 못했다.

한편 무역흑자국가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일 기회를 걷어찬 것은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타임지는 17일(현지시각) 기사에서 미국이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려면 정치·군사적 동맹국의 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해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발언권을 약화시킨 전력이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상호방위 의무에 대한 확신도 심어주지 못했다. 자유무역을 위한 다자간 공조 대신 일대일 무역협상을 선호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향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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