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북한의 대남비방 파고가 거칠다.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시작된 지 하루만인 22일에는 북한군 판문점 대표부를 내세워 보복과 징벌을 위협했다. “우리 혁명무력이 임의의 시각에 징벌의 불소나기를 퍼부을 수 있게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발사 대기 상태에서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다”는 북한의 주장은 일촉즉발의 한반도 정세를 그대로 드러낸다.

같은 날 노동신문도 “우리 군대는 절대로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위협을 쏟아냈다. 북한이 미국을 겨냥해 괌 주변수역 타격위협을 쏟아낸 뒤 잠시 주춤하던 긴장상황이 UFG 훈련을 계기로 다시 수위를 높이는 형국이다.

북한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을 겨냥한 도발 위협도 서슴지 않고 있다. 미국·일본을 겨냥한 타격을 위협하면서도 그에 앞서 ‘남조선 불바다’가 현실화 할 것임을 내비친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은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대통령 탄핵 사태와 대선국면을 거치면서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나타냈다. 보수정권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의 정부가 남한에서 출범하기를 원하는 모습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단절됐던 남북관계를 복원하려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거듭된 당국회담 제안과 이산상봉 추진 방안에 사실상 거부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남측 제안에 별다른 입장을 표명 않고 제시된 회담날짜를 그냥 넘겨버리는 선택을 했다. 7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에서 ‘신(新) 한반도 평화비전’을 밝힌데 대해서도 아무런 답이 없다. 이에 따라 북한과의 대화채널 가동과 인적·물적 교류 사업을 통해 남북 간 화해분위기 조성은 물론 북한 비핵화 논의 등 현안논의의 틀을 만들어가려던 정부 당국의 구상도 차질이 빚어졌다.
 
북한의 이런 모습을 두고 상당한 내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출범 초기 문재인 정부와의 탐색적 대화에 나서기도 어려울 정도로 평양 당국의 속사정이 복잡하다는 얘기다.

우선 올 초부터 본격화한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 관성이 남북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의 격렬한 대치국면을 초래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핵·미사일 도박이 한창인 상황에서 서울의 제안에 눈길을 주다가는 집중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 더욱이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이 끝나는 8월 말까지는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란 얘기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대남 적대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는 점도 조속한 대화재개나 관계개선의 걸림돌일 수 있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5년 동안 끊이지 않아온 핵·미사일 도발과 이로 자초한 대북제재는 한반도 정세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김정은까지 전면에 나서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거나 “항복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하라”는 등의 섬뜩한 언급을 쏟아냈다. 이를 두고 북한 최고지도자가 직접 대남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남북관계의 복원 가능성을 스스로 없애버렸다는 진단이 나온다.

김정은이 자신의 내부 통치기반을 다지려 의도적으로 남북관계를 긴장시킨 점도 문재인 정부의 손길에 호응하기 어려운 이유란 분석이다. 미국의 위협을 과장해 핵·미사일 개발의 당위성을 선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과의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워 자신의 대내적 리더십을 과시하려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김정은은 ICBM급 화성-14형의 성공을 자신의 ‘권위’ 문제와 연결시켜 권력을 공고화 하는데 주력하는 모습도 드러낸다. 집권 초반 내놓은 정책기조인 ‘경제·핵 병진노선’이 정당하다는 걸 주장하려는 목적도 깔려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대화거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대북접근과 설득 노력을 지속해 나간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북한의 호응을 지속적으로 촉구하면서 당국대화와 이산상봉 등에 나올 수 있도록 압박을 해나가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김정은의 잇단 도발 드라이브는 국내 뿐 아니라 대북 국제공조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입지를 좁혀버린 측면이 있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을 ‘남조선 집권자’로 폄훼하면서 한·미동맹 와해와 적대적 대북정책 폐지 등의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새 정부 길들이기 차원의 압박이란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이다. 미국을 향해 괌 타격 등을 위협하던 북한 김정은은 잠시 주춤한 상태다. 하지만 한·미 연합훈련 등에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려 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월과 9월 두 차례 핵실험을 실시했던 북한이 언제 6차 실험을 벌일 것인가 하는 것도 초미의 관심사다.

또 하나 주목되는 건 김정은의 행보다. 우리 관계 당국에 따르면 김정은은 8월 초 중부전선 최전방 지역까지 몰래 다녀간 것으로 파악된다. 경기도 연천지역의 우리 군 GOP(일반전초)에서 약 1㎞ 떨어진 최전방 북한군 소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포착됐다. 구체적인 정황은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김정은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도발을 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의 예측불가한 도발 드라이브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우리 정부는 좀 더 신중하고 치밀하게 대북접근 전략을 짜야 한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공조에 주력하면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두 마리 토끼잡기’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북한은 ICBM 발사 성공으로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위한 최종 관문을 넘었다”(7월4일 국방과학원 보도)고 주장하는 등 핵과 미사일을 내세운 공세를 강화할 기세다. 이 같은 안보위기 상황을 현명하게 넘길 수 있는 대북전략을 짜는 것과 동시에 국민들이 안심할 북한 핵과 미사일 억제·대비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문재인 정부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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