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강력한 은산분리제도를 통해 기업집단의 비효율적 자원배분 위험을 차단해왔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보고서는 그 역할을 자기자본제도로 넘길 것을 제안하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금융회사의 그룹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해 규제제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5일 이기영 연구위원의 ‘그룹 리스크 반영을 위한 금융회사 자기자본 규제 개선 방향’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룹 리스크’란 기업집단에 소속된 금융회사가 계열회사에 대한 출자 등 그룹 내 행위를 통해 겪을 수 있는 위험을 뜻한다. 지난 2013년 금융계열사를 통해 과다발행한 회사채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던 동양그룹이 그 예다. 연구자는 “최근 그룹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통합감독체계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며 자기자본규제를 중심으로 금융회사들의 위험관리 현황을 점검했다.

◇ 보험·증권업 규제는 미흡

국제금융 감독기구 조인트 포럼은 지난 1999년 발표한 ‘금융 복합기업에 대한 감독’ 보고서에서 출자관계에 의한 자본왜곡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자기자본규제제도를 보완하는 방안들을 제시했다. 금융회사가 계열사를 지배한다고 판단될 경우 이들을 단일주체로 파악해 회계중복 문제를 피한 ‘블록 쌓기 방식’과 금융회사가 보유한 계열회사의 지분 전부를 자기자본에서 차감하는 ‘전액 공제 방식’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금융회사는 그룹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금융기관인 은행은 강력한 은산분리정책의 대상이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도입된 각종 금융규제 또한 적용받고 있다. 연구자는 금융지주회사 및 그룹에 대해서도 “현재 그룹 차원의 건전성 감독체계가 수립되어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연구자는 금융자산의 비중이 높은 일반 기업집단에 대해선 종합적 감독체계가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보험회사의 경우 규정상 타 계열사에 대해 단독으로 지배력을 확보했을 때는 조인트 포럼이 제시한 보완책들의 적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지배관계 없이 계열관계만 형성된 경우에는 자기자본 산정기준이 특별한 조정을 받지 않고 있다. 연구자가 보다 높은 자본건전성을 요구하는 바젤3 규제를 이들 보험회사에게 적용한 결과 다수의 보험회사가 자기자본비율의 유의미한 하락을 경험했으며, 개중에는 302.1%에 달하던 자기자본비율이 110.1%로 폭락한 경우도 있었다. 연구자는 이를 바탕으로 “규정의 맹점으로 인해 보험회사들의 자본적정성이 과대평가되어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출자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적용되는 일괄적 규정도 문제시됐다. 현재 국내 증권회사들은 계열관계와 상관없이 출자액을 전부 증권회사의 자기자본에서 차감하는 ‘전액 공제 방식’을 적용받고 있다. 증권회사가 재무 상태가 부실한 계열사로부터 적극적으로 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현실이 반영된 제도지만, 연구자는 증권사가 계열사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에도 전액 공제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의 손실분산역량이 과소평가됐다는 뜻이다.

연구자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자기자본 규제가 금융회사의 그룹 리스크를 반영할 수 있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특히 계열회사의 지분보유 정도에 따른 선별적 규제를 통해 위험관리제도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게 피력됐다.

◇ ‘은산분리’ 대체 가능할까

한편 연구자는 그룹 리스크 문제의 해결이 금산분리 문제와도 맞닿아있다고 밝혀 주목을 모았다. 현 은행법은 산업자본의 은행자본 소유가능지분과 의결권을 각각 10%와 4%로 제한하고 있으며,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하는 은행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후보자 시절부터 은산분리 원칙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케이뱅크·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은산분리 완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진 상태다. 부실기업에 대한 자금융통 및 자본독점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시행 중인 은산·금산분리 원칙은 재계로부터 금융업의 성장을 제한한다는 비판도 함께 받아왔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금융혁신을 주도하기 위해선 관련 규제를 부분적으로나마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자는 금산분리 규제를 일부분 완화하는 대신 자기자본 규제제도를 금융회사와 계열사의 출자관계를 적절히 반영하도록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업의 금융자본 보유를 일정부분 허용해 자본조달능력을 강화하고, 경영건전성 유지·제고 역할은 자기자본 규제제도에게 맡기자는 뜻이다. 지분제한보다 자본규제가 은행의 안정성 제고에 효율적이라는 국제결제은행(BIS)의 1999년 보고서가 근거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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