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형 유격수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김하성. <뉴시스>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유격수는 야구의 꽃 중 하나다. 상대 타자가 친 빠른 타구를 몸을 던져 글러브로 낚아챈 뒤 1루로 송구해 아웃시키는 모습은 그야말로 백미다.

유격수(遊擊手)라는 포지션 이름은 야구에서 가장 특이하다. 투수와 포수는 던지고 받는 선수를 의미하고, 나머지 수비 포지션은 각 위치를 의미한다. 하지만 유격수는 다르다.

유격수에서 ‘유격’은 군대에서의 ‘유격’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유격’의 사전적 의미는 ‘적지나 전열 밖에서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적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일’, ‘처음부터 공격할 적을 정하지 않고 형편에 따라 우군을 도와 적을 공격하는 일’이다. 유격수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담당하는 베이스 없이, 2루와 3루 사이의 수비를 맡기 때문이다.

이 위치는 야구 경기에서 가장 많은 타구가 날아오는 곳이다. 그만큼 수비 부담이 크다. 순발력과 스피드는 기본이고, 강하고 정확한 송구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침착함과 집중력, 뛰어난 야구 센스가 요구되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뛰어난 유격수를 보유하는 것은 강팀의 핵심 요건 중 하나다. 제 아무리 뛰어난 투수나 타자를 갖췄다 해도, 유격수 위치에서 타구가 줄줄 빠져나간다면 승리를 챙기기 어렵다.

때문에 유격수는 보통 공격력보단 수비력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수비에서의 체력부담이 커 공격에서는 주로 9번 등 하위타선에 배치되는 편이다. 공격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유격수를 포기하고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유격수가 강력한 공격력까지 갖춘다면? 그 팀의 전력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도 ‘강한 9번’ 정도가 아닌, 중심타선에서 활약할 정도의 공격력이라면 그야말로 만화 같은 선수가 된다.

넥센 히어로즈에 그런 선수가 있다. 주인공은 김하성이다.

김하성은 지난 30일 자신의 생애 첫 ‘한 시즌 100타점’을 기록했다. 100타점은 훌륭한 중심타자를 상징하는 기록이지만, 지난해에만 13명이 달성했을 정도로 아주 특별한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그 선수의 수비포지션이 유격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대 프로야구에서 100타점 고지를 밟은 유격수는 단 2명뿐이었다. 2003년 기아 타이거즈 홍세완이 딱 100타점을 기록하며 최초로 이름을 남겼고, 2014년엔 넥센 히어로즈 강정호가 117타점으로 유격수 역대 최다 타점을 기록한 바 있다.

세 번째로 ‘유격수 100타점’을 기록한 김하성은 역대 최연소라는 타이틀도 더했다. 1995년생인 김하성은 현재 만 21세다. 홍세완은 만 25세, 강정호는 만 27세에 100타점을 기록했다. 김하성이 더욱 놀라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격형 유격수’ 자체도 놀라운데, 나이까지 어리다.

김하성은 고교시절부터 압도적인 실력으로 주목을 받은 선수다. 고교시절 이름을 떨치던 선수들이 프로무대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지만, 김하성은 달랐다. 특히 선수 육성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넥센은 메이저리그로 떠날 가능성이 높은 강정호의 후계자로 김하성을 낙점하고, 일찌감치 1군에 합류시켜 많은 공을 들였다.

첫 시즌은 그가 가능성을 살짝 보여준 해였다. 60경기에 나서 타율 0.188과 2홈런을 기록했다.

이듬해 강정호는 예상대로 메이저리그로 향했다. 넥센은 여러 선수를 유격수 후보로 놓고 저울질했다. 당시 염경엽 감독이 1순위로 꼽은 것은 윤석민(현 kt 위즈)이었다. 아무래도 김하성은 아직 힘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유격수 자리를 꿰찬 것은 김하성이었다.

고졸신인 2년차인 2015년, 김하성은 140경기에 나와 유격수를 소화하며 0.290의 타율과 19개의 홈런, 22개의 도루까지 기록했다. 겨우 스무살에 20-20클럽을 목전에서 놓쳤다. 괴물 신인의 탄생이었다. 지난해에는 아예 144경기 전 경기 출장 기록을 세우며 0.281의 타율을 남겼다. 20홈런, 28도루로 20-20클럽까지 정복한 그다.

특히 김하성은 입단 당시 왜소했던 몸이 부쩍 단단해지며 점차 중심타자로 도약했다. 2015년 73타점, 2016년 84타점 등 타점 생산능력도 갈수록 향상됐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100타점 고지를 밟았다.

비록 음주운전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강정호는 대체불가할 것으로 여겨지던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였다. 그러나 김하성은 그런 강정호를 대체가능한 선수로 만들어버렸다.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강정호를 능가하는 선수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아직 거론하기 이른 감이 있지만, 김하성의 메이저리그 도전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커져간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공격력과 수비력을 겸비한 유격수는 극히 드물다. 김하성이 부상이나 슬럼프 없이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경험까지 축적한다면, 메이저리그에서의 활약도 충분히 가능하다.

유격수는 정해진 위치 없이 싸우는 전사다.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 김하성, 그는 진정한 유격수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