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의 로힝야족 난민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지난 8월 25일 무장 로힝야족 반군단체가 미얀마 경찰서를 습격하면서 촉발된 ‘로힝야 사태’는 한 달 새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군부의 과격진압이 이어지면서 약 110만명으로 집계되던 라킨 지역의 로힝야족(2014년 자료) 중 지난 한 달 간 40만명 이상이 미얀마 국경을 넘었다. 로힝야족 거주지역의 40%가 소개된 것을 두고 미얀마 정부는 “테러 활동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 반면 국제 인권단체들은 ‘인종 청소’로 규정하고 나섰다.

◇ ‘민주주의의 어머니’가 침묵하는 이유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대모이자 현 미얀마 국가고문인 아웅산 수지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침묵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다수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폭력사태를 막지 못한 수지 여사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으며,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은 “(끔찍한 비극이 벌어지기 전까지)마지막 기회가 남았다”며 조속한 행동을 촉구했다.

아웅산 수지가 미얀마 내 민족문제에 침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민주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미얀마는 샨족·카렌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을 규합하는데 실패했으며, 군부는 각 지역의 반군·민족해방군과 끊임없이 내전 중이지만 미얀마 정부는 평화적 해결의 여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5년 전 10만명의 로힝야족이 강제이주를 당했을 때도 수지 여사는 침묵을 지켰다.

BBC 동남아시아 특파원 조나단 헤드는 13일(현지시각) 기사에서 아웅산 수지가 정치적 입장에 대한 고려 때문에 로힝야족의 인권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내부의 시선은 매우 적대적이며, 방송카메라 또한 불교·힌두교 측에 유리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같은 매체의 퍼겔 킨도 “군사결정권이 없는 수지 여사가 군부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돌아온다”며 수지 여사의 입이 자유롭지 않다고 봤다.

CNN 13일(현지시각) 기사에 따르면 수지 여사는 오는 19일부터 25일까지 열릴 UN 총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국가 화합과 평화’를 주제로 한 대국민 TV발표가 19일 예정돼있다. 외신은 작년 9월 UN 총회에서 미얀마 정부의 인종정책을 두둔했던 수지 여사가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군부를 비판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 방글라데시는 ‘기댈 언덕’이 될 수 있을까

미얀마의 골칫거리였던 소수민족 문제는 로힝야족이 ‘대탈출’을 감행하면서 이제 국제사회의 책임으로 넘어왔다. 특히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로힝야족의 거주지인 라킨과 가까운 방글라데시는 로힝야족 난민문제의 최우선 당사자다.

현재 방글라데시의 남서부도시 콕스 바자르에는 8제곱킬로미터의 영역에 난민수용시설이 건설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에 따르면 1만4,000개의 숙소와 8,000개의 화장실이 열흘 안에 완공될 예정이지만, BBC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계획이 “비현실적이다”고 단언했다. UN에 따르면 하루 2만 명의 난민이 새로 발생한 날도 있다. BBC는 매일같이 새로 도착하는 난민들을 포함해 수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지원이 없다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빈곤국이자 가뭄·홍수 피해까지 입었던 방글라데시가 40만명이 넘는 로힝야족 난민들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BBC는 16일(현지시각) 기사를 통해 방글라데시 정부가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의 여행 및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했다고 보도했다. 가족·친구가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더라도 예외는 없다.

BBC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방글라데시가 난민과 자국인들을 분리하는 데는 조만간 난민들을 미얀마 또는 제3국으로 내보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방글라데시를 제외한 인접국 중 이슬람국가는 말레이시아·파키스탄 등이다. 그러나 지난 수 년 간 미얀마에서 주변국으로 건너간 로힝야족의 대부분은 최저수준 이하의 생활고를 겪고 있다.

한편 이번 사태로 악화된 방글라데시-미얀마 관계는 군사 갈등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미얀마가 헬리콥터와 드론 등으로 방글라데시 영공을 침범하고 있다며 이를 ‘군사 도발’로 간주했다. 미얀마 군부가 난민들의 재입국을 막기 위해 국경지대에 지뢰를 매설했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며, 실제로 인명피해도 수차례 발생했다. 반면 미얀마는 해당 혐의들을 모두 부인하며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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