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암살 사건과 관련, 살해 혐의로 기소된 동남아 여성들에 대한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YTN 방송화면 캡처>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영화 ‘더록’에서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는 화학가스 VX에 노출됐으나 극적으로 살아났다. 해독제인 아트로핀을 투여하면서 해피엔딩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김정남은 사망 당시 아트로핀을 주사했지만 병원으로 이송 도중에 사망했다. 그만큼 VX의 작용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다. 해독제를 즉시 주사해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실제 김정남은 사망 당시 뇌와 양쪽 폐, 간 등 주요 장기가 모두 손상된 상태였다. AP통신과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그의 시신을 직접 부검한 모하마드 샤 마흐무드는 “혈액에서 당뇨와 고혈압, 통풍 치료에 쓰이는 6개 종류의 약물이 검출됐지만, 급사 요인이 되지 못한다”면서 사인을 급성 VX신경작용제 중독으로 밝혔다. 지난 3일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열린 시티 아이샤(인도네시아인)와 도안 티 흐엉(베트남 국적자)의 공판에서다.

말레이 정부 소속 법의학자 누르 아쉬킨 오스만도 김정남의 부검 소견에 힘을 실었다. 사망 당시 신경계가 기능을 하는데 필수적인 효소도 현저히 떨어진 상태였다는 것. 그는 공판 증인으로 출석해 “김정남의 혈액 분석 결과, 혈중 콜린에스테라아제 효소 농도가 리터당 344개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정상치는 리터당 5,300개 수준이다.

말레이 법원은 이날 VX가 검출된 김정남의 소변, 혈액, 간 조직 등에서 채취한 샘플과 가방, 티셔츠, 속옷 등을 정식 증거로 받아들였다. 앞서 담당 판사와 검사, 변호인들은 샘플 확인 과정에서 VX에 노출될 위험을 막기 위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했다.

김정남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시티 아이샤와 도안 티 흐엉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북한인 용의자들의 말에 속았다는 것. 리얼리티 TV쇼 촬영을 위한 몰래 카메라로 믿었다는 얘기다. 두 사람은 지난 2월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VX를 발라 살해했다. 이들에게 VX를 주고 살해를 지시한 북한인 용의자 4명은 범행 당일 출국해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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