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극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을 따낸 시리아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AP>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오세아니아 및 아시아 지역은 일찌감치 본선진출 티켓 주인공이 가려졌고, 본선 조별리그보다 지역예선 통과가 더 험난하다는 유럽과 남미 지역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아프리카 지역 역시 이미 대다수 국가의 운명이 정해진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한 두 나라가 전 세계에 뜨거운 감동을 전하고 있다. 우리를 끝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던 시리아, 그리고 아이슬란드다.

우리와 함께 아시아 최종예선 A조에 속했던 시리아는 마지막 경기에서 이란과 비겨 우즈벡을 제치고 3위에 이름을 올렸다.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으로 터뜨린 동점골이었다. 만약 시리아가 역전까지 성공했다면, 우리나라는 월드컵 본선 직행티켓을 속절없이 빼앗겼을 것이다.

이렇게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시리아는 B조 3위 호주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이제부턴 상대를 꺾지 못하면 곧장 탈락이었다. 호주를 넘어선다 해도 북중미예선 4위라는 까다로운 상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처럼 절체절명의 승부가 남은 순간. 시리아는 자국에서 경기를 갖지 못했다. 내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홈구장은 자국에서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말레이시아였다. 시리아는 최종예선 때도 말레이시아를 홈으로 사용했으며, 이로 인해 10경기 모두 해외에서 치러야 했다. 심지어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경기장을 이리저리 옮기는 처지였다.

홈구장 아닌 홈구장에서 시리아는 강호 호주에 맞서 1대1로 비겼다. 하지만 호주에서 열린 2차전에선 끝내 무릎을 꿇었다. 연장혈투 끝에 1대2로 패하며 월드컵을 향한 여정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하지만 시리아는 월드컵 본선 진출 이상의 감동을 남겼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시리아 선수들의 마음속엔 월드컵 본선 진출보다 더 큰, 평화라는 원대한 꿈과 희망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내전으로 지친 시리아 국민들에게 소중한 희망이 돼줬고, 전 세계에 시리아의 안타까운 현실을 알렸다.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룬 아이슬란드 응원단이 기뻐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AP>

아시아에 시리아가 있었다면, 유럽에선 아이슬란드가 또 다른 감동을 안겼다. 유럽대륙에서 가장 멀리, 가장 외롭게 떨어져있는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I조 1위를 차지하며 사상 첫 본선진출이라는 기쁨을 누렸다.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고작 34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시 도봉구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대부분 빙하나 호수이고, 날씨 또한 혹독하다. 축구는 물론 축구 강국과 거리가 먼 환경이다.

실제로 2010년 아이슬란드의 피파랭킹은 100위를 넘나드는 수준이었고, 세계축구의 변방이었다. 그랬던 아이슬란드가 월드컵 본선 진출까지 이루게 된 출발점은 사회 문제 해결이다. 약물에 빠진 청소년이 급증하는 등의 문제가 심각했던 아이슬란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포츠를 적극 활용했다. 1990년대 후반, 각 지역마다 스포츠 인프라를 구축했고 특히 청소년들의 스포츠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아이슬란드에서는 청소년들의 일탈이 크게 줄어들었고, 사회·경제적으로 활기가 돌았다. 아이슬란드의 이번 월드컵 본선 진출은 이 같은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축구, 그리고 스포츠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증명했다.

우리나라는 이번에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뜻 깊은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최종예선 내내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그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경기 내용과 결과가 좋지 않았고, 감독과 선수는 신뢰를 잃었다. 실언과 여론의 뭇매가 이어졌고, 심지어 15년 전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을 둘러싼 논란까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과연 이런 축구가 우리에게 어떠한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일까. 시리아와 아이슬란드를 보며, 우리의 축구가 참 씁쓸하게 다가온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