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여중생 딸 친구 살해· 시신 유기 사건의 피의자 '어금니 아빠' 이영학에 대한 현장검증이 실시된 지난 11일 오전 서울 중랑구 사건현장에서 이씨가 당시 상황을 재연한 후 경찰차량에 탑승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정수진 기자] “실종된 것 같다”고 했다. “주변 CCTV를 확인해 봐 달라”고 통사정 했고, 딸아이가 마지막으로 만난 이모(14) 양의 이름도 알려줬다. 하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흘렸다. 실종이라고 주장했지만 가출로 판단했고, 주변조사도 큰 의미없이 진행됐다. 결국 아이는 참혹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온,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얘기다. 피해 여중생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경찰의 부실대응을 향한 비난이 뜨거워지고 있다.

◇ 안일한 초동수사가 ‘화(禍)’ 키웠다

이른바 이영학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건 자체가 충격적인데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산더미 같아서다. 특히 경찰이 사건 초기에 부실하게 대응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은 커지고 있다.

실종신고 당일, 피해자 A양의 어머니는 딸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이양의 존재를 알렸다고 한다. 경찰관이 보는 앞에서 이양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경찰은 “실종신고 당시 상황이 소란스러워 잘 듣지 못했다”며 해명했다. 그러나 신고 당시 CCTV 화면에 따르면 민원인이 4명밖에 되지 않는 등 소란스러운 정황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에도 A양의 어머니는 “가출이 아닌 실종 같다”고 여러차례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친구와 놀다가 연락이 끊겼을 것”이라며 단순 가출로 치부했다.

실종신고 접수 당시 112상황실에서는 생명에 대한 위험을 뜻하는 ‘코드1’ 지령에도, 경찰은 나흘이 지나서야 서장에게 첫 보고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자유한국당 박순자 의원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피해자 휴대전화 신호가 사라진 망우리사거리 일대만 수색하고 전과 18범에 정신지체 2급인 요주의 인물인 이영학의 집을 찾아가지 않은 건 문제”라며 “(신고) 4일이 지나서야 합동수사를 시작했는데 실종신고는 피해자가 살해되기 전에 했다. 조금만 더 초동수사하고 신속대응, 공조과정이 이뤄졌다면 금쪽같은 아이를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설상가상, 이젠 부실대응을 넘어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위해 사건일지를 조작·은폐하려 한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 경찰, 은폐·조작 의혹까지

이양(이영학의 딸)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망우사거리 주변 패스트푸드점의 CCTV를 먼저 확인한 것도 경찰이 아니라 피해자 A양(14)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경찰은 CCTV를 자신들이 확인한 것처럼 거짓 보고했다.

심지어 이영학의 집을 수색하기 위해 사다리차를 동원한 것도 피해자 A양의 부모다. 경찰은 피의자 이영학의 집을 수색한 시간을 2일 오전 11시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는 2시간 뒤인 오후 1시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지구대 CCTV 자료 등에 기초해 “신고접수 후 너무 오랜시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조작한 게 아니냐”며 “귀가촉구 문자 전송 시간도 다르게 보고해 후속조치까지 과다 소요됐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 아닌가 추측한다”고 의심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12년 오원춘 사건 때도 최초 신고를 무시하고 부실하게 초동대응에 나서면서 비극을 막지 못했다. 당시 피해여성은 112에 신고해 자신의 위치를 침착하게 말했지만, 경찰은 주변의 인기척만 살피다 돌아갔다. 결국 이 여성은 잔혹하게 살해됐다.

17일 국감에 불려나간 정훈 서울경찰청장은 내부 감찰을 통한 책임소재 규명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어금니아빠 살인사건의 재발을 막겠다고 했다. 5년 전에도 경찰은 같은 말을 했다.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안이 커지는 이유다.

한편 중학생 딸 친구를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범행 동기 등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동기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기존의 진술을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이씨의 살인 및 사체 유기 의혹 등을 전담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은 부장검사 1명과 2명의 검사로 구성됐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