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FTA 재협상의 일부 쟁점들에서 양보한 일데폰소 과하르도 멕시코 경제부 장관.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이 시작된 지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의 경제협력관계가 깊은 만큼 합의를 도출하기도 더 어려운 모양새다. 한편 미국과 한미FTA 재개정 협상을 진행 중인 한국 경제계도 NAFTA 재협상의 진행상황을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 일몰조항·최저임금 양보한 멕시코… ‘협상 폐지’ 가능성 의식했나

15일(현지시각)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던 NAFTA재협상 제5차 회의가 지난 21일자로 마무리됐다. 낙농업·자동차 부품·공공조달 등 28개 안건을 논의한 3국은 이번에도 특별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으며, 로버트 라이시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 등 일부 고위인사들은 애당초 회의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외신들은 대부분 “빠른 시일 내 NAFTA 재협상을 완료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물 건너간 듯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멕시코가 그간 마찰을 빚어왔던 일부 쟁점에서 양보하며 NAFTA 폐지 가능성을 낮춘 것은 주목할 만하다. 블룸버그는 16일(현지시각) “멕시코가 NAFTA 재협상을 계속해나갈 의사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일데폰소 과하르도 경제부 장관이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NAFTA를 5년 주기로 재검토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일몰이 지나면 해가 지듯 협정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효력이 없어진다는 뜻에서 ‘일몰조항’이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재협상 과정에서 강력하게 주장하던 옵션 중 하나였다.

일몰조항이 통과될 경우, 앞으로 5년마다 3국이 협약 연장에 합의하지 못한다면 NAFTA는 자동 소멸한다. 그동안 멕시코는 NAFTA가 이미 참가국들이 6개월의 유예를 두고 협정에서 발을 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몰조항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비록 아무런 제동장치 없이 협상이 자동 만료되는 것은 반대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멕시코로서는 어쨌든 기존의 방침을 굽힌 셈이다.

21일(현지시각)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캐나다는 NAFTA 재협상 과정에서 멕시코에게 최저임금을 인상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전 세계에서도 가장 싼 축에 속하는 멕시코의 최저임금은 멕시코산 최종재의 가격을 낮춰 북미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멕시코 경제일간지 ‘엘 에코노미스타’는 이날 엔리케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일일 80.04페소였던 최저임금을 88.36페소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멕시코의 새 최저임금은 한화로 5,131원 수준이다. 엔리케 니에토 대통령은 멕시코가 최근 단행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결정이 지난 30년간 가장 높은 폭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사소한 조정에 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멕시코의 낮은 임금수준이 무역불공정에 책임이 있다는 북미 국가들의 주장을 수용함으로서 스스로를 방어할 논리를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88.36페소(일당)라는 최저임금 또한 북미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수준이여서, 미국·캐나다가 10.4% 인상안에 만족할지는 미지수다.

◇ 강 건너 불구경 할 수 없는 한국

세계은행의 2016년 자료에 따르면 멕시코는 수출의 80%를 미국에게 의존한다. 미국은 작년 한 해 멕시코와의 무역에서 643억달러의 적자를 냈으며, 이는 중국·유럽연합·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협상을 요구한 원인이자 멕시코가 NAFTA 폐지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이 한미FTA를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유사하다. 비록 무역의존도와 흑자규모 모두 멕시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미국이 가장 중요한 교역국가 중 하나며 협상의 향방에 따라 수출구도가 대대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에는 멕시코와 한국의 의견이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무역협정의 완전폐기 가능성을 심심찮게 언급하는 것 또한 양자의 닮은 점이다. 한미FTA 협상보다 한 발 빨리 시작한 NAFTA 재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보고 배울 점을 찾을 수 있는 이유다.

한편 북미시장에 진출해있는 한국기업들은 NAFTA 재협상 문제의 당사자기도 하다. 포브스의 10월 25일(현지시각) 기사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멕시코산 자동차의 무관세기준을 강화하거나, 혹은 멕시코 제조업체들이 더 많은 미국산 부품을 사용하도록 압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높아진 완성차 가격은 소비·투자를 감소시켜 북미 자동차시장을 축소시킬 수 있다. 현대차가 GM·도요타·폭스바겐 등과 함께 속해있는 미국 자동차무역협회는 현재 NAFTA가 미국 자동차산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는 내용의 광고를 제작·송출하는 중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