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온 몸에 다섯 군데나 총을 맞고 귀순한 북한병사 오청성(24)을 살려낸 이국종 교수(아주대 병원 중증외상 센터장)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이국종 교수는 처음 귀순병의 상태를 보고 과연 살려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지만 두 차례의 큰 수술 끝에 마침내 한 생명을 구해냈다. 그는 지금 사선을 넘어 온지 2주 만에 일반병실로 옮겨 회복절차에 들어갔다.

이국종 교수가 입원 일주일 여 만에 의식을 회복한 병사에게 “당신의 몸속엔 대한민국 국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하자 오청성은 ‘한국인들에게 고맙다’며 사의(謝意)를 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군대생활 8년째 운전병으로 근무했다는 오청성은 앞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70cm의 키에 60kg 정도의 체격을 가진 그는 총상으로 출혈이 워낙 심해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3시간짜리 수술을 두 번이나 하는 동안 피를 계속 보충해야 했는데 이때 들어간 혈액이 1만2,000cc 정도였다. 일반 성인 혈액 정량(4,000)의 3배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한다.
 
또 배우 현빈과 비슷한 인상을 가졌다고 말한 이국종 교수는 의식이 돌아온 오청성에게 민감한 국내 TV뉴스 대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K-pop을 들려줬더니 걸 그룹 소녀시대가 부르는 ‘Gee’가 제일 맘에 들어 하더라고 전했다.

22일 유엔군사령부는 귀순 당시의 긴박했던 공동경비구역(JSA)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동영상을 공개했다. 귀순병이 지프차를 몰고 달리는 모습, 군사분계선(MDL)에 도착한 다음 차에서 내려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 모습, 그를 쫒으며 총질을 하는 북한군 경계병들의 모습 등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다른 화면에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나무 아래 죽은 듯이 누워있는 귀순 병사를 우리 측 두 명의 군인이 포복으로 접근해 손으로 끌어당기는 모습과 그 뒤에서 한 사람이 엄호하는 장면 등이 열상감시 장비(TOD)에 그대로 포착되기도 했다. 유엔사령부 측은 이를 근거로 북한측이 명백하게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23일에는 빈센트 브룩스 유엔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JSA를 방문, 사건당일 귀순병을 구출한 노영수·송승현 두 상사와 권영환 대대장, 매튜 파머 미군 대대장, 제프리 슈미트 소령, 의무 담당관 로버트 하트필드 병장 등에게 표창장을 주고 전공을 치하했다. 긴박했던 그날, 우리 측 군사대응은 매우 적절했다고 사령관은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판문점 귀순병 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하나는 이국종 교수가 귀순 병사의 뱃속에 기생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을 두고 일부에서 ‘인격침해’ 운운함으로써 본질과는 거리가 먼 소모적인 논쟁거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사건 당일 현장에서 북한군이 수 십 발의 총을 난사했는데도 우리 측이 아무런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며 정치권에서는 유일하게 자유한국당만이 부실대응을 문제 삼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유엔군사령관의 표창장 수여는 자유한국당의 이같은 비판이 근거 없는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었다.
 
이국종 교수는 지난 13일 북한 병사의 몸 5곳에 총상이 있고, 복부를 열어보니 대량의 기생충과 분변, 옥수수 등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이에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아무리 북한군 병사라고 하지만 뱃속에 있는 내용물까지 밝히는 것은 그에 대한 혐오감과 함께 공포심을 조장할 우려가 있으며, 그의 인격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요지의 글을 페이스 북에 올렸다.
 
그러자 당사자인 이국종 교수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3시간에 걸친 회견에서 이국종 교수는 그동안 감춰졌던 국내 중증외상 의료체계 실태도 소상하게 밝혔다. 김종대 의원의 말처럼 북한군의 인격을 침해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었고, 오직 생명을 살려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에만 몰두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증 외상환자들을 다루는 의사에게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내는 일 보다 소중한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또 한 줌도 안 되는 말이 또 다른 말을 낳고, 그것이 계속 반복되면서 자신 같은 외과 의사들만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번에 판문점에서 수원 아주대 병원까지 시속 300km로 귀순 병사 후송 및 응급처치를 담당했던 장비는 주한미군의 항공의무 후송팀인 ‘더스트 오프(DUST OFF)’다. 그 팀이 30분 이내에 센터까지 후송시키지 못했더라면 제아무리 뛰어난 장비와 의술로도 생명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60만 대한민국 군대는 그 규모만큼이나 사망자나 부상자도 많다. 해마다 자살만도 100명이 넘지만 위험한 장비나 폭발물을 다루는 병사들은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군에 중증외상센터 같은 첨단 의료시설이 절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미군 같은 긴급 후송시스템은 아직도 먼 얘기다.
 
병사 한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미군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인다. F-35 전투기 한 대 가격이 1,000억원 이상인데, 그 돈이면 ‘더스트 오프’ 같은 긴급 구조헬기 여러 대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군에서 예산을 배분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과연 생명의 존귀함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이국종 교수가 2011년 소말리아 해적의 총격으로 위독해진 한국인 석해균 선장의 생명을 구한 뒤 국내 중증외상센터의 실태가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중증외상 환자들은 대부분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블루칼라로 저소득층이 많다. 공사 중 안전사고나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행기의 속도로 옮길 수 있는 후송체계가 필수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병원의 입장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 분야다. 서울 강남의 대형병원에 중증외상센터가 없는 이유다.

이국종 교수는 이번 귀순 병사를 소생시킨 다음 언론을 통해 다시 한 번 호소했다. 중증 외상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운영하는 17개 권역 외상센터의 열악한 환경 등을 지적하고, 그 지원방안 마련을 요청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불과 일주일 만에 청와대에 접수된 국민청원 동참자 수가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대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외상센터의 문제점을 파악, 개선방안을 검토하라”고 복지부에 지시했다. 귀순병 사건을 계기로 이국종 교수의 오랜 숙원이 해결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27일엔 중증 외상센터 설립에 필요한 예산지원에 여야가 모처럼 합의했다는 낭보도 들린다.

중증 외상의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라울 코임브라 교수(캘리포니아 주립대 중증 외상센터장)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고 “환자를 병원까지 이송하는 전달체계를 시급히 개선하고, 권역별로 책임을 나눠 사고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청하고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그의 지적은 대한민국 60만 군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한반도는 아직도 정전상태’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중증 외상환자 발생확률이 가장 높은 집단 중의 하나가 군대조직이다. 군은 천문학적인 고비용의 첨단무기 도입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장병들의 고귀한 생명을 지켜주는 의료체계 완비에 더욱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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