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메이 총리는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비용으로 500억유로를 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관련 협의가 빠르게 진전된 모양새지만, 브렉시트 협상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한 지 1년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지난 3월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 탈퇴 서한에 서명하면서 시작된 브렉시트 협상기한은 오는 2019년 3월까지며, 양측은 내년 10월까지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이미 협상시한의 3분의1 이상을 쓴 셈이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합의사항은 도출되지 못한 상황이다.

◇ ‘500억유로짜리 이혼’ 성사가능성 높아

BBC는 29일(현지시각) 영국이 500억유로(약 64조4,260억원) 가량의 탈퇴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유럽연합에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비록 테레사 메이 총리와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대표는 “아직 협의 중이다”는 단편적인 입장만을 밝혔지만, 다수 외신들은 영국이 제안한 500억유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양측이 합의점을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이 가지고 있던 EU 분담금 및 각종 출연 의무에 대한 위약금의 성격을 가지는 이 탈퇴비용은 양측의 결별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이혼합의금’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메이 총리는 지난 9월 영국이 이혼합의금으로 200억유로를 낼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브렉시트로 인해 소모될 경제적 비용을 550억유로 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이 제안을 일축했다. 핵심 안건들을 상정하기도 전에 가장 기초적인 논의에서부터 양측의 의견이 엇갈렸던 셈이다. 반면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이번 제안은 유럽연합 관계자 다수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혼합의금 협의의 대체적인 윤곽은 다음 주면 드러날 듯하다. CNN은 “양측의 재정협상은 상당히 진전됐지만, 유럽연합이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확인하려면 오는 12월 4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EU 외교관의 발언을 전했다. 12월 4일에는 메이 총리와 바르니에 EU 협상대표,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만남이 예정돼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외교관은 “최종 결정은 12월 14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EU 정상회담에서 내려질 것이다”는 전망도 밝혔다.

◇ 무역협상 시작은 언제부터… 12월 중 합의 도출될까

브렉시트 협상의 최대이슈는 영국과 유럽연합이 단일시장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영국은 일정 수준의 부담금을 감내하면서 EU 시장에 대한 접근권한을 유지할 수도, 이를 포기하고 무역·관세·노동정책에서 모두 물러설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은 각각 ‘소프트 브렉시트’와 ‘하드 브렉시트’로 불리는 두 선택지를 두고 아직 제대로 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유럽연합이 무역안건들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기 전에 민감한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조만간 합의점이 도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혼합의금의 액수와 영국 내 거주 중인 수십~수백만 명의 유럽연합 시민들에게 어떤 법체계를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국경출입제한 여부다. 전문가들은 마지막 안건이 가장 까다로운 이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면서 자연스레 영국령 북아일랜드도 유럽연합의 옷을 벗게 됐다. 유럽연합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를 묶어주던 테두리가 사라지면서 양자의 관계 재설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영국과 유럽연합 국가들 사이에 인적·물적 장벽이 생긴다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도 같은 경계선이 그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아일랜드는 영국이 양자 사이에 별도의 출입국 관리처를 두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만, 각국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BBC는 26일(현지시각) 기사에서 보수당 출신의 영국 국제무역장관 리암 폭스가 ‘EU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고 보도했다. 아일랜드·북아일랜드 문제는 ‘소프트 브렉시트냐, 하드 브렉시트냐’ 문제가 마무리된 후에야 완전히 해결될 수 있으며, 무역논의를 나중으로 미루길 원하는 EU가 지지부진한 협상에 책임이 있다는 논지다. 리암 폭스 장관의 반대편에는 아일랜드 문제의 선결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필 호건 EU 농업담당 집행위원이 자리하고 있다. 아일랜드가 영국인에 대한 입국심사를 강화하는 등 ‘하드 보더’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한편 북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28일(현지시각) EU 관계자들이 이번 논의를 계기로 영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에도 경계선이 강화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북아일랜드의 집권여당인 민주연합당(DUP)는 영국과의 관계를 더 좁히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국민투표 당시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DUP는 현재 영국 보수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다.

12월에는 유럽연합의 고위관계자들이 브렉시트 이야기를 나눌만한 자리가 많다. 4일 예정된 메이 총리·융커 집행위원장·바르니에 협상대표의 회담은 물론 6일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고위관리회의가 예정돼있다. BBC의 정치부 편집장 로라 쿤스버그는 특집기사를 통해 이날 회의가 브렉시트 협상의 길잡이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만약, 만약 논의가 잘 진행된다면”이라는 단서가 달리긴 하지만, 영국이 동의할 수 있을 만한 합의가 도출될 경우 14일 열리는 EU 정상회담에서 본격적으로 무역이슈 논의를 시작할 만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이는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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