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 꽃이 피었습니다②] “아동은 놀아야 한다”, 법이 말하고 있다

2024-05-31     김두완 기자
한국해양 소년단이 196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이 헌장 포스터(좌)와, 보건복지부에서 제정한 아동권리헌장(우).  /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보건복지부, 그래픽=이주희 기자

시사위크=김두완・권정두 기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어릴 적 엄마에게 늘 듣던 말이다. 하지만 “열심히 놀아라”란 말은 듣지 못했다. 노는 것이 마치 잘못인 것처럼 인식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공부공화국’, ‘학원공화국’이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교육열이 더 심해진 모양새다. 우리 아이들, 그냥 노는 건 안 될까.

◇ ‘아동 놀 권리’, 국제협약 동의 33년

이미 법과 제도는 아이들이 ‘놀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를 ‘아동 놀 권리’라 말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명시한 아동의 권리 중 하나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18세 미만 아동의 모든 권리를 담은 국제적인 약속으로, 유엔총회에서 1989년 11월 20일 만장일치로 채택된 국제인권조약이다.

대한민국은 1991년에 이 협약에 동의를 했다. 즉,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모든 조항은 국내에서도 법규적 효력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 근거는 우리 헌법에 있다. 헌법 제6조 제1항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동 놀이에 대한 국가의 관심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 1957년 내무부·법무부·교육인적자원부·보건복지부 등 4개 부처 장관 명의로 선포한 ‘어린이헌장’이 그 예다. 어린이헌장은 어린이들이 옳고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 헌장으로, 어린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6·25 전쟁 이후 얼마 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시기임에도 아동의 놀이를 강조한 점은 의미가 있으며 그 후 1988년에 개정돼 현재의 어린이헌장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아동 놀 권리 정책 추진현황 / 사진=김두완 기자(충주 놀샘터), 그래픽=이주희 기자

어린이헌장을 선언하고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을 통해 아동의 놀 권리에 대한 법·제도적 틀은 형성됐지만 그 후 상당 기간 별다른 정책적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다 201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 ‘아동 놀 권리’에 관한 구체적인 일반논평이 발표되며 세계 각국이 관심을 갖게 됐고 국내에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2015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어린이 놀이헌장’을 선포하며 어린이의 놀 권리를 존중해야 함을 발표했고, 정부에서는 △2015년 제1차 아동정책기본계획 △2020년 제2차 아동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아동의 권리보호와 놀이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21대 국회에서는 ‘아동기본법’이 발의된 바 있다. 아동기본법은 아동을 ‘보호 대상’에서 ‘권리 주체’로 전환하고 법적으로 아동의 권리를 명시해 보장하겠다는 취지의 법안이다. 하지만 21대 국회 임기종료로 해당 법안은 폐기됐다. 만약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돼 통과될 경우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지 33여년 만에 ‘아동 놀 권리’에 관한 국내법이 첫 시행될 수 있다.

◇ 지자체, ‘아동 놀 권리’ 조례 제정 비율 33%

지방자치단체도 아동의 놀 권리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조례 제정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9년부터 광역의회와 기초의회에서 ‘아동 놀 권리’ 조례가 제정 및 시행되고 있는 상황으로, 2024년 5월 현재 81개의 ‘아동 놀 권리’ 조례가 제정됐다. 243개 자치의회를 기준으로 볼 때 약 33%에 해당한다.

국내 지자체(광역의회+기초의희) 243곳을 기준으로 아동 놀 권리 조례는 81곳, 아동친화도시 조례는 160곳이 제정돼 있는 상황이다. /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그래픽=이주희 기자

자치의회에 제정된 ‘아동 놀 권리’ 조례는 ‘아동복지법’ 상 18세 미만에 해당하는 아동을 대상으로 아동의 놀 권리를 보장하고 건전한 놀이문화를 조성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지자체들은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아동친화도시’는 유엔 산하기관인 국제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시 또는 지역 거버넌스에 부여하는 ‘인증’이다.

‘아동친화도시’로 인증을 받으려면 다양한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특히 협약에서 제시하는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례 등이 제정돼야 한다. 현재 아동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조례는 160개가 제정돼 있으며, ‘아동 놀 권리’ 조례의 두 배에 해당한다.

조례에서 정의하고 있는 아동친화도시는 모든 아동이 행복하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실천하는 도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기본정신을 실천해 아동이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아동친회도시를 조성한다는 취지다.

아동 놀 권리 조례는 세종, 광주, 제주가 100% 제정됐으며, 아동친화도시 조례는 서울, 세종, 광주, 제주가 100% 제정돼 있는 상태다. /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그래픽=이주희 기자

◇ 보여주기식은 안 돼, 실질적인 삶의 변화로 추진돼야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이후 현재까지 4번의 국가보고서 심의를 받았다. 마지막 심의는 2019년에 진행된 제5~6차 심의다. 차기 7차 심의를 위한 국가보고서 제출은 올해 12월까지다.

아동 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안 발의부터 각 지자체의 아동 놀이권 조례, 아동친화도시 조례 제정 등의 노력들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하는 국가보고서에 실릴 사항들이다.

다양한 사업과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근거 규정을 만드는 일은 의미있고 훌륭한 노력이다. 특히 법안과 조례 등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동의 권리와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하는 일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가치다.

하지만 단지 보여주기식으로 그쳐선 안 된다. 실제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김민정(가명·40대·잠실) 씨는 “우리 동네가 아동친화도시인줄 몰랐다”며 “(아동친화도시인 경우) 별도의 혜택이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또 “아이들에게 놀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지도 몰랐다”며 그럼 어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문했다.

‘아동 놀 권리’를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놀 권리의 주체(아동)와 부모들은 현실적으로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단순히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한 전시행정에만 힘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하는 이유이자, 진정한 의미의 ‘놀 권리 실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 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