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케어러, ‘NO’케어러②] 가족돌봄청년 어깨가 유독 무거운 이유

2024-05-31     이민지 기자

 

오직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병든 부모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생계를 책임지는 청춘들이 있다.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가기에도 바쁜 나이에 ‘영케어러(Young Carer)’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인생의 내공이 쌓인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영케어러가 더 이상 가족이란 족쇄에 묶이지 않을 수 있도록, ‘노(NO)케어러’를 외치면 사회가 손을 내밀어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영케어러’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시사위크>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법을 찾아가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참고로, 기사는 인터뷰와 취재 등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구성했으며, 취재원인 영케어러 보호를 위해 가명 및 일러스트를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2021년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한 달에 300만원이 넘는 엄마 요양비를 감당하며 수호(가명) 씨 집은 주저앉고 말았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시사위크=이민지·이영실·연미선·이주희 기자  일주일간 사용할 수 있는 돈과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여행? 아니면 쇼핑? 아마, 대부분은 본인을 위해 투자한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돌봄청년인 수호 씨는 이 질문에 “내일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가족돌봄청년에게 돈과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닌, 가족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돌봄청년들은 생계의 측면에서 어떤 문제와 직면하게 될까. <시사위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는 엄마를 돌보는 수호 씨 △프리랜서로 일하며 조현병 엄마를 돌보고 있는 채원 씨를 통해 가족돌봄청년의 고충을 들여다봤다.

◇ ‘안심소득’을 받고 오히려 늘어난 걱정

2021년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 삶이 빠듯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한 달에 300만원이 넘는 엄마 요양비를 감당하다 보니 수호(27) 씨네 가정형편은 급격히 주저앉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남겨질 가족들이 걱정됐는지,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두셨고 이로 인해 수급비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혹자는 ‘서른 살이 다 된 성인인데, 일 해서 돈을 벌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생계에 보탬이 되고 싶은 수호 씨의 마음과는 달리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수호 씨는 2022년 군대를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암 판정을 받은 아빠의 간병에 뛰어들어야 했다. 지난해 3월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는 엄마 곁을 지켰다. 아빠의 부재로 장남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엄마는 수호 씨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여동생 수아(16·가명)가 아르바이트를 해 생계에 보탬이 되긴 했지만, 지금은 극심한 우울증에 이 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계에 보탤 수 있는 지원은 없을까 인터넷으로 찾아보던 수호 씨는 가족돌봄청년 대상으로 안심소득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공고를 보고 직접 신청했다. 하지만 안심소득을 지원받게 되면 기존에 받던 생계급여와 주거급여가 끊긴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수호 씨의 생계 톱니바퀴는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 그래픽 =이주희 기자

다행히 수호 씨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 3인 가구 수급비로 △생계급여 150만원과 △주거급여 29만원을 받아 최소한의 생계유지가 가능했다. 수호 씨는 그간 수도세를 포함한 각종 공과금과 생활용품, 식료품비, 엄마 병원비를 150만원에서 해결했다. 교통비를 아끼려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집에서 영등포구에 있는 병원까지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걸어 다니는 등 악착같이 절약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초록우산이나 지자체에서 생계비 지원 명목으로 종종 후원금을 보내주면 통장에 꼬박꼬박 모아 놨다. 아직 수호에겐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수호에게 약 2,000만원의 빚을 남겼다. 고인이 남긴 빚을 상속받지 않기 위해 한정승인을 신청한다고 해도, 수호 씨에겐 주거비 지원을 받기 전 밀린 1,700만원의 월세 빚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동생의 대학교 진학, 엄마 수술비 등 아직 수호 씨가 가장으로서 해결해야 할 이벤트가 수두룩하다. 

사실 수호 씨의 생계 톱니바퀴가 본격적으로 어긋나기 시작한 건 서울시에서 시범사업으로 운영하는 안심소득을 신청하면서부터다. 지난 4월 26일 첫 안심소득을 받은 수호 씨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150만원이 안심소득으로 들어오는 대신, 기존에 받던 생계급여와 주거급여가 끊겼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가계에 보탤 수 있는 지원은 없을까 인터넷으로 찾아보던 중, 가족돌봄청년 대상으로 안심소득을 지원해준다는 공고를 보고 신청한 게 이런 결과를 낳을 줄 몰랐다. 복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수호 씨에게 그 누구도 안심소득을 신청하면 기존에 받던 수급이 끊긴다고 안내해주지 않았다. 

안내는커녕 오히려 수호 씨는 지자체의 실수로 부정수급자가 될 뻔 했다. 안심소득이 들어온 날 생계급여도 들어왔기 때문이다. 똑같은 금액이 같은 날 두 번 입금된 것에 의아함을 느낀 수호 씨가 지자체에 직접 문의하지 않았다면, 중복으로 수급을 받은 부정수급자가 돼 모든 지원이 끊겼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잘못 들어온 생계급여 150만원을 지자체에 돌려주면서 수호 씨는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허술함을 몸소 느꼈다. 

◇ 다가가기엔 먼 성년후견인 제도

홀로 조현병 엄마를 돌보고 있는 채원(29) 씨는 엄마 명의의 집(주택) 때문에 지금껏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지난해 생긴 서울시 가족돌봄청년지원전담기구에서도 집 때문에 마땅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실제 지난 4월 채원(가명) 씨의 가계부를 토대로 구현한 이미지 / 그래픽=이주희 기자

이에 채원 씨는 생계를 전적으로 혼자 감당하고 있다. 지난 4월 기준, 채원 씨는 발달장애인 미술교육 프리랜서 일로 75만4,260원을 벌었다. 남들처럼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싶어도 조현병을 앓고 있는 엄마가 언제 무슨 일을 만들지 몰라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최선이다. 채원 씨는 이 돈으로 공과금을 포함한 생활비부터 학자금 대출까지 해결했다. 부족한 금액은 생활비 대출 60만원, 적금 해지한 18만원으로 충당했다. 

오래 일하고 싶어도 엄마를 돌보러 집에 들어가야 해, 더 벌어봤자 50만원 안팎이다. 이 마저도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필요한 생필품을 사거나 엄마 용돈, 엄마 병원비를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당연히 주변 친구들처럼 연애는 꿈도 못 꾼다. 

생계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채원 씨는 엄마 명의의 집을 주택연금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성년후견제도를 신청하는 것이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장애·노령 등의 사유로 정신적 제약을 가진 사람이 존엄한 인격체로서 삶을 영위해갈 수 있도록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다. 2013년 민법은 금치산·한정치산 제도를 폐지하고 성견후견제도를 도입했다.

기존 금치산·한정치산 제도는 사회 전체의 거래 안전에 중점을 두고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에 대한 고려 없이 행위능력을 획일적으로 제한한 반면, 성년후견제도는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의 존중’을 기본이념으로 해 후견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재산 관련 분야뿐 아니라 치료, 요양 등 신상에 관한 분야에도 폭넓은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성년후견제도는 법적인 접근이 필요한 만큼,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청년이 혼자서 직접 신청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최소 80만원이 들어간다. 가족지원센터 등에서 전문 변호사를 초빙해 성년후견제도 무료 교육도 진행하지만, 발달장애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조현병 엄마를 둔 채원 씨가 도움을 받을만한 곳은 마땅치 않다.

해당 사진은 가족돌봄청년인 수호(가명) 씨가 머물고 있는 실제 집의 내부 모습이다. 성인 3명이 다리를 펴고 눕기에도 비좁은 반지하. 수호 씨네 엄마는 매트리스 하나 없이 얇은 이불에 몸을 맡긴다. / 시사위크

◇ 1인분이 아닌, n인분의 무게를 해결하려면…

오래전부터 가족돌봄청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영케어러와 관련해 가장 많은 연구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영국은 이들을 위한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케어러에 대한 1대1 지원을 포함, 다양한 정보 및 조언을 제공해 가족돌봄청년들의 다양화된 문제와 욕구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도 가족돌봄청년을 직접 면담한 지원 매니저가 평가 결과에 기반해 1대1로 청년과 함께 미래 가족 돌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가족돌봄청년의 전반적인 복지 향상을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개별상황에 따라 적합한 지원 서비스를 연계해 돌봄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쉽게 말해 수호 씨처럼 복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청년에게는 어떤 지원이 맞는지 안내해주고, 채원 씨처럼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친구에게는 그에 맞는 전문가를 연계해 주는 식이다. 

가족돌봄청년은 1인분의 무게가 아닌, 가족 전체 n인분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다. 이에 가족돌봄청년이 짊어진 욕구와 문제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이 다양하다. 가족돌봄청년뿐 아니라 그 가족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지원과 연계를 해줄 수 있는 전담 케어 매니지먼트(care management)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