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부부의 청양 귀농 실전노트㊺] 고추농사가 망했다

2024-09-30     청양=박우주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10만㎢ 남짓의 국토에서 극명하게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이 너무 밀집한데 따른 각종 도시문제가 넘쳐난다. 반면 지방은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따른 농촌문제가 심각하다.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청년들의 귀농이다. 하지만 이 역시 농사는 물론, 여러 사람 사는 문제와 얽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사위크>는 청년 귀농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기, 그 험로를 걷고 있는 용감한 90년대생 동갑내기 부부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편집자주]

우리는 올해 고추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 청양=박우주

시사위크|청양=박우주  나는 알고 있었다. 느끼고 있었다. 6월부터 고추 성장이 좋지 않더니 7월 수확기를 앞두고는 반 이상 성장이 완전히 멈춰버렸다. 불안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영양제를 계속 넣어줬지만 다시 살아날 기미가 안보였다. 자만하지도 않았고, 대충한 것도 없었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땅을 두 번이나 더 갈아 흙을 부드럽게 해줬다. 비싼 뿌리 발근제도 넣어줬다. 그런데도 이렇게 되니 7월부터는 고추가 보기 싫어졌다. 약도 안하고 방치했다. 귀농 6년차, 최악의 고추농사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유를 생각해봤다. 우선 모든 농사는 땅, 즉 ‘흙’이 가장 중요하다. 땅이 좋으면 뭘 심어도 잘 자라는데 우리 땅은 퇴비만 넣어줬지 통기성 관리를 안 해줬다. 안일했다. 매년 고추가 잘됐으니까 올해도 전보다 더 신경 쓰면 잘 되겠지 생각하고 지난해 아쉬웠던 점을 보완했는데 정작 핵심인 땅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땅이 매년 병들고 있었던 것 같다.

땅이 숨을 쉰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흙에 숨 쉴 구멍이 있어야 작물 뿌리가 그 틈을 파고들며 쭉쭉 뻗어 잘 자랄 수 있다. 그 틈으로 물과 영양분도 공급된다. 그런데 숨 쉴 구멍이 없다면? 작물이 잘 자라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뿌리가 파고들 공간이 없게 되고, 물과 영양분도 공급되기 어렵다. 그렇게 뿌리가 건강히 자라지 못하면 작물은 죽는다. 농사의 가장 기본이지만 놓치기 쉽고 어려운 게 땅 관리다.

통기성을 좋게 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대표적인 게 볏짚 넣어주기다. 볏짚에는 영양분도 있고 몇 개월 놔두면 삭기 때문에 섞어주면 자연스럽게 통기성이 좋아진다. 볏짚은 소의 먹이이기도 한데, 소 먹이가 되는 볏짚은 비싸다. 한 롤에 8~9만원 정도 한다 농촌을 돌아다녀보면 보이는 볏짚 말아놓은 하얀색 뭉치를 본 적 있을 거다. 머시멜로라고 불리기도 하는 데 그거 하나가 8~9만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농업용으로 사용하는 볏짚은 소가 못 먹는 볏짚이다. 흙이 많이 들어가거나 빗물이 들어가서 조금 썩은 볏짚은 잘 아는 곳에서는 무료로 주기도 하고, 1~2만원이면 살 수 있다. 우리는 다행히 전에 살던 곳 이장님께서 20분 거리를 직접 싣고 오셔서 개당 만원에 주셨다. 이번에도 부탁드릴 예정이다. 그리고 돈을 좀 써서 마사토도 한차 부를 예정이다 마사토는 입자가 일반 흙보다는 굵은 흙인데 통기성에 좋다. 시세가 계속 비싸지고 있어서 요즘은 25톤 차에 27만원 정도 한다.

고추농사를 망치고, 구기자농사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 청양=박우주

고추농사가 망하면서 우리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고민거리도 많아졌다. 구기자농사는 여름과 가을 2번 수확하는데, 여름 구기자는 열매도 많이 없고 잎이 다 떨어져서 수확량이 크지 않았다. 다른 곳에도 물어보니 날씨가 너무 더워서 꽃이 다 떨어지고 힘을 못 받아서 대부분의 농가가 그랬다고 한다. 우리가 6년 동안 해왔던 고추와 구기자가 모두 성적이 좋지 않으니 당연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앞으로 매년 날씨가 이렇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긴다면 농사를 늘리는 것이 필요할까? 아니면 농사를 주력으로 하는 게 맞을까? 농사를 주력으로 하려면 하우스도 더 짓고 땅도 더 확보해야 하는데 가능은 할까? 고민이 많아졌다.

시기적인 점도 고민을 더한다. 우리는 귀농 후 땅을 살 때 귀농귀촌창업자금 대출을 받았다. 귀농귀촌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이 대출을 받는다. 집을 짓거나 땅을 살 때 3억까지 대출이 되고 2% 금리에 5년 거치 10년 상환이라 조건이 좋다. 그런데 우리는 내년이면 거치기간이 끝나고 내후년부터는 원금 상환이 시작된다. 

거치기간인 5년 동안 승부를 봐야 하는데, 올해 농사를 망치면서 다른 해결방안이 필요해졌다. ‘반 농부’인 만큼, 내년엔 부업을 늘리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고, 아내가 직장을 다니는 것도 생각 중이다. 나 같은 경우는 귀농창업자금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못한다.

1년차부터 5년차 까지는 귀농인에 대한 농업 보조가 다양하게 있다 우리도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다만, 5년차 이후부터는 귀농인이 아니라 현지인이다. 그래서 보조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물론 농업에 100% 매진하고 있고 농사를 잘 짓는 농업인이라면 보조받을 수 있는 것이 다양하게 있다. 그런데 금액이 너무 크다. 몇 억원에서 50%~70% 보조 하는 개념이라 우리에겐 맞지 않는다.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다고 걱정만 가득한 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수익으로도 잘 먹고 잘 저축하고 있다. 조만간 유럽여행도 다녀올 계획이다. 다만, 올해 농사를 망쳤다보니 미리미리 더 잘 대비하고 좋은 방향성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내년에 아내가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혼자서 농사를 이끌어갈 생각에 기대도 된다. 

우리가 몇 년간 농업에 종사 해보니 농업 하나만 보고 귀농을 하기는 힘든 것 같다. 농업을 전공하고, 농업에 꿈이 컸다면 모를까, 우리 같은 귀농인들은 큰 농사를 짓기도 어렵고 큰 투자를 하기도 어렵다. 농업과 함께 병행할 일자리도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지방도시도 살고 농업도 살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 상황에 비춰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크게 든다.

 

박우주·유지현 부부

 

-1990년생 동갑내기

-2018년 서울생활을 접고 결혼과 동시에 청양군으로 귀농

-현재 고추와 구기자를 재배하며 ‘참동애농원’ 운영 중

blog.naver.com/foreveru2u

-유튜브 청양농부참동TV 운영 중 (구독자수 4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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