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마을버스는 오늘도 달린다

2024-11-11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대학생 시절, 경기도의 대형 쇼핑몰 장난감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쇼핑몰은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로 이동할 수 없는 곳에 위치했다. 차량으로 이동하면 20분 정도 거리였다. 뿐만 아니라 산을 통과해야 해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가용 차량이 없었던 학생의 유일한 이동수단은 ‘마을버스’였다.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새벽 5시부터 마을버스 승강장으로 달려가 줄을 섰다. 탑승자는 기자 만이 아니었다. 쇼핑몰 다른 매장을 관리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그 버스를 이용했다.

새벽부터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타는 것은 고된 일과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나름의 ‘낭만’도 있었다. 출근시간, 바쁘게 달리는 버스는 평소 바쁜 업무로 만날 수 없는 동료 직원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15인승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각자의 가족과 삶, 행복, 슬픔을 이야기하곤 했다. 

다른 장난감 매장의 아주머니로부터 희귀 질환을 앓고 있었던 자녀가 완치됐다는 기쁜 소식을 접한 것도, 식당 매니저의 아들이 전역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마을버스 안이었다. 마을버스가 단순히 직장과 집을 연결하는 존재가 아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도 해준 것이다.

약 10년이 흐른 현재, 마을버스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지금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중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내버스가 달릴 수 없는 도서산간 지역, 지방, 좁은 골목, 아파트 단지 안을 마을버스는 자유롭게 누빈다. 시내버스가 인간 몸의 동맥과 정맥 역할을 한다면 마을버스는 온몸 곳곳으로 혈액을 보내는 ‘모세혈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마을버스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가 차량 소유가 늘고 기차, 항공기 등 다양한 대중교통 인프라가 갖춰지면서다. 서울시에서는 최근 마을버스 노선 중 70%가 지난해 기준 운행횟수를 17% 감축했다. 일각에서는 마을버스 이용자 수가 점차 감소해 향후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인구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방지역의 마을버스들은 더욱 사정이 어렵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는 석봉운수와 광산버스 2개 운수업체가 마을버스 운행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지자체 지원이 크게 줄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타랑께 마을버스’도 교육재정 어려움 등으로 운영을 중단할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을버스 운영 활성화를 이룬 지역도 있다. 기자가 취재했던 강원도 지역은 전국 최초로 공영제 마을버스를 도입, 새로운 마을버스 운영 모델을 제시했다. 특히 지난 2020년 6월 ‘버스완전공영제’를 시작한 강원도 정선군은 올해 기준 마을버스 이용자수가 155%나 늘었다. 20~30대 젊은 층 이용도 활성화됐다. 단돈 1,000원이면 정선군 시내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공영제 마을버스는 등산객 등 지역 관광 활성화에도 효과적이었다.

물론 공영제 마을버스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다수 산적한 실정이다. 여전히 시내버스에 비해 이용자 수는 적다. 때문에 지자체의 재정 자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정비·수리 관련 인프라 확충도 문제다. 특히 최근 정부 친환경 정책에 따라 도입되는 전기버스의 경우 전문 수리 기사가 필수지만 이를 지자체에서 고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마을버스는 낡았다. 인구 감소, 지역 소멸 가속화로 그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 사라질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이용자들이 있다. 그들이 있는 한 마을버스는 정류장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이들의 시동이 멈추기 전까지 우리는 어떻게 마을버스를 지원해야할지, 또 그 역할을 대체할 새로운 교통수단은 무엇이 있을지 보다 신중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