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관련없는 과거 이슈로 맹폭… ‘제주항공 마녀사냥’ 사고 규명에 도움 될까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지 1주일이 흘렀다. 아직까지 사고의 원인을 비롯해 제주항공의 과실 여부 또한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그럼에도 다수의 언론매체에서는 ‘제주항공’ 탓으로 단정지으며, 섣불리 책임을 몰아가는 모습이 적지 않다. 특정 기간 제주항공의 항공기 운항횟수, 정비소홀, 과거의 사고·준사고 이력 등을 꼬집으며 이번 사고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이슈들로 마녀사냥식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언론보도의 행태가 사고의 진실에 접근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왜곡된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 언론이 ‘제주항공이 과거 조류충돌을 이유로 회항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LCC 사고 1위’라는 문구를 제목에 포함시켜 보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제주항공은 이번 사고를 제외하고, 과거 항공 사고·준사고 이력이 각각 2건, 3건 존재한다.
우선, 사고와 준사고를 분류하는 기준을 살펴보자.
항공안전법에 따르면 항공기 사고는 △사람의 사망, 중상 또는 행방불명 △항공기의 파손 또는 구조적 손상 △항공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거나 항공기에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 등이 해당된다.
항공기 준사고는 항공안전에 중대한 위해를 끼쳐 항공기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으로서, △항공기 시스템 고장 및 항공기 동력·추진력 손실, 기상이상 및 항공기 운용한계 초과 등으로 조종 상의 어려움 발생 또는 발생할 수 있었던 경우 △조류충돌(버드 스트라이크) 등 동물과 접촉·충돌 및 우박 등 물체로 기체 이상 발생 △활주로 이탈 △허가받지 않은 활주로 착륙 등이 포함된다.
또,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 부속서에 따르면 항공기 운항 도중 인명 피해 또는 직접 기체 등에 손상이 발생한 경우를 ‘사고’로 규정한다. 반면 ‘준사고’는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의 항공기 사고에 준하는 사고를 말한다.
해당 언론에서 지적한 과거 제주항공의 사고·준사고 이력은 어떨까.
제주항공의 항공 사고 2건은 △2006년 착륙 접지 중 동체 후미 활주로 접촉(테일 스트라이크) △2007년 착륙활주 중 활주로 이탈 등이며, 당시 사고가 발생한 항공기는 제주항공이 창사 초기 사용했던 봄바디어 DHC-8-402(Q400) 기재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는 부상 등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부산김해국제공항 활주로 이탈로 항공기가 배수로에 빠진 사고에서는 부상자만 4명 발생했다. 각각 △인명 피해가 없더라도 테일 스트라이크로 동체 후미가 긁힌 경우에 해당하는 점 △활주로 이탈로 탑승객이 부상을 입은 점으로 인해 사고로 분류됐다.
또한 준사고 3건은 △2011년 12월 김포공항 활주로 32R 이륙 중 조류충돌(버드 스트라이크) △2013년 2월 김포공항 활주로 14R 착륙 중 활주로 이탈(눈으로 인한 미끄러짐) △2015년 12월 김포→제주 노선 비행 중 비상용 산소마스크 사용(객실 공기 공급 스위치 조작 실수) 등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2011년 12월 발생한 준사고는 조류충돌로 인해 이륙 직후 회항한 건으로, 피해규모는 엔진 팬과 냉각부품 일부가 파손된 정도다. 부상자를 비롯해 승객의 피해는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제주항공 외 다른 항공사들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일로, 새떼를 쫓는 일은 각 공항에서 담당해야 할 사안이다.
또, 착륙 중 활주로를 이탈한 것은 조종담당운항승무원(PF)이 착륙브리핑을 실시하지 않은 것과 김포공항 측에서 활주로 14R에 대한 제설작업 후 활주로 노면 상태에 관한 정보가 항공기에 제공되지 않아 운항승무원들이 공항 활주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다.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비상용 산소마스크를 사용한 비행에서는 운항승무원(기장·부기장)이 객실 공기 공급 스위치인 엔진브리드스위치가 꺼진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이륙한 것이 원인이다. 이 때문에 비정상적인 객실 여압 문제가 발생했으며, 일부 승객들이 구토 및 두통 증상을 호소하고 승객 3명은 제주공항의료진의 응급처치를 받고 귀가했다. 해당 사건도 경상 환자가 발생했을뿐 큰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리하면, 해당 언론에서 지적한 과거 제주항공의 사고 2건과 준사고 3건 모두 이번 여객기 사고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제주항공이 첫 취항을 한 2006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항공사들의 사고·준사고 내역을 살펴보면 △아시아나항공 사고 5건·준사고 16건 △대한항공 사고 3건·준사고 16건 등으로 대형항공사(FSC)들의 사고나 준사고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에서는 단순히 저비용항공사(LCC)만을 겨냥, 제주항공의 과거 사건·사고를 들춰내 문제 삼는 모습이다.
언론이 준수해야 할 취재윤리강령 등 재난보도 준칙에 따르면 선정적 보도를 지양하며,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는다.
특히 국제민간항공조약 부속서 13, 3.1항과 5.4.1항에는 “항공기 사고나 준사고 조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고·준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므로 비난이나 책임을 묻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며 “비난이나 책임을 묻기 위한 사법적 또는 행정적 소송절차는 본 부속서의 규정 하에 수행된 어떠한 조사와도 분리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보고서는 항공안전을 증진시킬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도 명시돼 있다.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발생한 후 가장 힘든 이들은 유가족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제주항공 역시 이번 사고로 동료 4명을 잃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번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주항공 승무원들은 누군가의 가족이면서 동시에 제주항공 직원들의 친구이고 선후배다. 또한 운항승무원(기장·부기장)은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살리기 위해 조종간을 놓지 않고 노력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일부 포착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현재 사고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이번 사고의 책임이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지는 추후 밝혀질 것이다. 사고의 원인과 사고를 키운 요인이 무엇인지, 제주항공의 항공기는 문제가 없었는지 등이 명확히 밝혀지기까지 근거없는 추측과 의혹, 왜곡된 끼워맞추기식의 마녀사냥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과거의 사건을 끄집어내는 것이 사고수습과 원인규명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비단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