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세심한 배려 필요한 '시각장애인 이동권'

2025-02-06     이강우 기자

시사위크=이강우 기자  긴 연휴였던 구정 동안 잠시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4박 5일간의 일정은 여행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겨우 20분가량 됐을 때 흘러나온 착륙 준비 안내 방송은 일본이 얼마나 가까운 나라인지 상기시켜 줬다. 

도착한 규슈 지역의 구마모토시에서 본 것은 깔끔한 거리와 많은 관광객이었다. 구마모토성과 같이 일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건축물도 인상적이었지만, 거리 대부분이 서울 시내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오히려 기자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 시내의 거리들을 연상하며 “이곳은 한국 어디와 닮았네” 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다만 길거리를 계속 걸으면서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을 찾았다. 혹시나 해서 다시 둘러보고 다른 곳도 가봤지만 역시 큰 차이가 있다는 점만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위해 인도와 공공교통시설 등에 설치된 ‘점자블록’의 차이다.

돌아다녔던 숙소에서부터 쇼핑몰 내부까지, 거주지역부터 상업지역까지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위한 점자블록이 항상 충분히 깔려있었다.

사진은 일본 구마모토시의 한 도로에서 일부 점자블록을 침범해 공사를 진행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임시 점자블록을 설치한 모습./ 사진=이강우 기자

숙소 주변의 한 인도 주변에서 공사 작업을 하고 있던 현장에선 놀라운 광경도 목격했다. 인도를 가로지르는 공사로 인해 점자블록이 일부 침범당하자 ‘임시’ 점자블록 테이프를 설치해 놨다. 시각장애인들의 이동에 불편이 없도록 조치해 논 셈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기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그치지만, 인도나 점자블록 일부를 점유할 경우 임시 점자블록을 설치한 것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안전을 위한 유도수나 통로 등은 설치됐지만, 임시 점자블록은 본 적이 없다. 이와 관련해 기자가 모 구청에 이 같은 사항을 문의해 본 결과 뚜렷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한국의 점자블록 문제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민원분석시스템으로 수집된 ‘점자블록’ 관련 민원은 2,847건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를 두고 “이 같은 수치는 그 이전 3년간 접수된 1,672건의 민원의 약 1.7배에 달하는 수치다”며 “무관심 속에 방치된 점자블록 문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졌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민원 유형별로 따져보면 △점자블록 파손·훼손 1,257건 △불법주차 차량 및 다른 시설물이 점자블록을 침범 603건 △점자블록 미설치 지역에 신규 설치 요구 596건 △잘못 설치된 점자블록 재설치 요구 325건 등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점자블록 설치가 횡단보도, 버스정류장 등 일부에만 설치가 필수라는 점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본지에 “일부 필수인 장소를 제외한 곳의 설치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라 지자체의 매뉴얼 등에 따라 설치가 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다행히 인식 개선을 통해 서울시 등에선 보도공사 시 점자블록을 보도에 연속으로 설치하는 부분이 현재 이뤄지고는 있으나 의무가 아니기에 예산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순수 여행 목적으로 처음 가본 이번 일본 여행에서 큰 충격을 받은 셈이다. 대한민국은 일본과 많이 닮아 있었지만 그 세부적인 ‘배려’에서 차이를 느꼈다. 한국이 사회적 약자이자 교통약자인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비교적 부족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 전역을 전부 다녀본 것은 아니기에 한국은 점자블록 설치가 미흡하고 일본은 잘돼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돌아본 광화문 근처 인도를 보고 나선 실망감이 밀려왔다. 아주 드문드문, 그것도 법적으로 고지된 횡단보도 앞에만 약간 설치돼 있고, 인도에 쭉 나열된 점자블록이 없는 것을 확인했을 땐 씁쓸한 감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