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카미카제’와 닮은 북한군의 우크라이나전 자폭 참극
북한학 박사
우크라이나 전쟁을 서둘러 끝내려는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의 압박과 협상 재촉에도 사태는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종전 혹은 제한적 휴전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셈법이 크게 다른데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문제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임시 봉합이 아닌 완전한 종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일각의 관측도 이런 배경에서다.
전쟁이 3년을 넘겨 장기화 하면서 러시아 지원을 위해 현지에 파견된 북한 전투병의 희생도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순 극동지역으로 들어간 북한군은 현지 적응훈련을 받은 뒤 12월 격전지인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에 집중 투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의 참전 사실을 숨긴 채 러시아 군복차림에 가짜 신분증까지 갖춘 불법 파병이자 용병투입이란 비난이 쏟아지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한미 정보당국과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 측은 북한군 사망자가 1,000명에 이르고 부상자는 3,000명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1만1,000명~1만2,000명 정도로 파악되는 파견 병력 가운데 3분의 1가량인 4,000여명의 전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1개 여단 규모의 손실이니 궤멸 수준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북한은 올 들어 3,000명의 병력을 추가로 현지에 보낸 것으로 우리 합동참모본부는 밝히고 있다. 영국 등의 최근 전황 정보는 북한군 사상자가 5,000명 이상일 것이란 관측을 내놓았다.
의아한 점은 이런 엄청난 전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생포된 북한군 병사는 2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은 1만 명이 넘는 병력이 전투에 참가했고 여단급 손실을 보는 엄청난 격전이라면 적어도 수십 명에서 100명 이상의 포로가 잡히는 게 상식이라고 귀띔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북한군 병사의 대부분이 포로로 잡힐 위기에 처하거나 일행과 떨어져 낙오되는 절박한 상황을 맞으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아예 전투지역 한 지점에 자결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돼있는 정황이 관련 사진과 함께 공개되기도 했다. 북한군 내부에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낙오·이탈하는 병력을 제거하는 일명 ‘처형조’까지 운영되고 있다는 전언도 있다.
참혹한 사실은 상당수 북한군이 최후에 얼굴 부분에 수류탄을 터트려 자폭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참전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한 북한이 병사들에게 안면부를 훼손토록 강요함으로써 사후에도 우크라이나 군 측에서 관련 채증을 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북한군 개입 초기 전사한 병사의 시신 얼굴을 불태워버리는 장면이 공개돼 이를 접한 국제사회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북한군이 몰살한 참호 등을 러시아군이 화염방사기 등으로 흔적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인 정황도 전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방식을 집단적으로 택할 수 있는 건 북한 체제에서 오랜 기간 치밀한 세뇌를 통해 이른바 수령으로 불리는 최고지도자와 노동당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도록 했기 때문이다. 생포된 한 북한군 병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포로가 되는 건 변절이라 배웠다”거나 “수류탄이 있었다면 나도 자결했을 것”이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어릴 적부터 사상교양을 통해 ‘수령님의 진정한 아들딸이 되자’고 외치도록 하고 ‘총폭탄이 되자’는 강요까지 받았으니 전투에 투입된 군인들에게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놀라운 건 북한 관영 선전매체에서는 연일 ‘자폭정신’ 운운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수령 결사옹위’ 운운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핵심 수뇌부를 목숨으로 보위하자는 내용이 넘쳐난다. 우크라이나전을 염두에 둔 선전·선동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초에는 한 특집 프로그램에서 아들을 전선에 보낸 어머니의 입장에 선 여성 배우가 “영웅이 되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말라. 고향은 너를 반겨주지 않을 것”이란 취지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여기에는 “(돌격전에서) 첫째가 아닌 둘째, 셋째의 자리로 물러선다면 못난 자식을 낳은 네 어머니는 울 것”이란 언급과 함께 “이수복 영웅의 어머니처럼 수령님이 기억하시고 우리 당(노동당)이 이름 불러줄 그런 영웅의 어머니처럼 내가 된다면”이라고 호소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이수복은 6.25 당시 전투에서 자폭했다고 북한이 선전하는 인물이다.
북한군의 극단적인 선택은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때도 벌어진 바 있다.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동해안 일대에서 정찰활동을 하던 중 좌초되자 상륙해 우리 군과 49일간 교전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당시 이들은 26명의 승조원 가운데 전투능력이 없는 11명의 동료를 즉결처형 형태로 사살한 뒤 전투를 벌이며 북한으로의 복귀를 시도했다.
우크라이나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북한군의 이런 모습은 일본 군국주의 시절 ‘카미카제(かみかぜ)’를 떠올리게 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궁지에 몰린 일본군은 폭탄을 가득 실은 전투기를 미 항공모함 등에 충돌시켜 타격을 주는 자살특공대 공격까지 서슴지 않았다.
반일과 반미를 체제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북한이 반인륜의 상징이자 일본 군국주의의 폐습으로 꼽히는 카미카제를 본 딴 행동을 벌인다는 건 자가당착이다.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용병을 파견한 것 자체가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인데 최악의 인권유린까지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구에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북한군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들이 목도한 전쟁 참상이 고스란히 북한 체제 내부 곳곳에 전해질 것이다. 북한 당국은 철저한 입단속을 강조하겠지만 최소 3,000명에 이르는 부상병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족이나 친지·이웃에 털어놓는 것까지 막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때같은 아들을 명분 없는 전쟁에서 잃은 부모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김정은 위원장이 맞닥트려야 할 우크라이나전 후폭풍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