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1주기] 여전한 그날의 고통… 든든한 버팀목 돼주는 ‘안산마음건강센터’

2025-04-16     권정두 기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1년이 지났다. 팽목항의 낡은 추모깃발이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지만 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의 고통은 여전히 그대로다. / 사진=김두완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다. 476명의 탑승자 중 304명이 사망 및 실종된 역대 최악의 참사였다. 끔찍한 참사를 직접 경험한 생존자들, 그리고 소중한 가족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유가족들, 그리고 이를 지켜본 국민 모두에게 그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 11년 지났어도 일반인 대비 심각… 참사 주기 다가오면 되살아나는 고통

그로부터 어느덧 11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약’이란 말이 있듯, 세월호 참사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충격과 슬픔, 분노와 파문은 어느 정도 누그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11번째 4월 16일을 맞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나온 시간들이 덧없기만 하다.

지난해 11월 발간된 ‘2024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건강 및 생활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289명 중 38.4%는 ‘우울 위험군’, 21.1%는 ‘불안 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위험 수준’은 32.2%였고, 외상 후 울분(PTED) 측면에서도 14.5%가 ‘심한 장애 상태’, 32.9%는 ‘장기간 울분으로 인한 고통상태’였다.

‘2024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건강 및 생활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생존자 및 유가족 중 상당수는 여전히 우울과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외상 후 울분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같은 조사에 참여한 세월호 참사 생존자 49명 중에서도 ‘우울 위험군’은 28.6%, ‘불안 위험군’은 16.3%를 차지했다. 14.3%는 PTSD ‘위험 수준’이었다. PTED ‘심한 장애 상태’는 14.3%, ‘장기간 울분으로 인한 고통상태’는 22.4%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은 이밖에도 각종 조사 지표에서 일반인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참사 주기 등 기념일이 돌아올 때면 더욱 그렇다. 소위 ‘기념일 반응’이 엄습하곤 한다. 평소엔 많이 나아진 것 같다가도 마치 그날로 돌아간 듯 슬픔과 아픔이 되살아난다. 참사 주기와 명절, 생일 등 여러 기념일들이 연중 돌아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아졌다는 말은 감히 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의 특성상 아무 이유나 계기 없이도 극심한 고통이 찾아오곤 한다.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할 때도 그날의 고통이 다시 생생해진다.

세월호 참사 직후 비상체제로 시작해 현재까지 피해자 및 유가족에 대한 심리지원을 이어오고 있는 안산마음건강센터는 최근 확장·이전해 새롭게 개소했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 11년 간 곁 지켜와… 안산마음건강센터로 ‘확장·이전’

안산마음건강센터는 이처럼 슬픔과 아픔 속에 4월을 맞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의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다. 세월호 참사 직후 비상체제로 꾸려져 ‘안산온마음센터’라는 이름으로 세월호 피해자 및 유가족에 대한 심리지원을 해오다 최근 확장·이전해 안산마음건강센터로 새롭게 출발했다.

안산마음건강센터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뿐만 아니라 각종 재난으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의 트라우마 치유와 회복을 돕기 위해 건립됐다.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 피해지원 특별법)’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건립하고 경기도가 운영하는 기관이다.

안산마음건강센터 1층 중앙엔 실내 추모공원이 마련돼있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안산마음건강센터 건물 출입구로 들어서면 먼저 햇살이 잘 드는 실내 추모정원이 맞이한다. 이곳엔 커다란 나무와 함께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추모정원을 중심으로 오른쪽엔 일반인도 이용 가능한 진료공간이 마련돼 있다. 기존의 ‘안산온마음센터’는 세월호 피해자 및 유가족에 대한 심리지원만 이뤄졌지만, 안산마음건강센터로 확장·이전한 뒤에는 정신건강의학과와 가정의학과 등 일반인에 대한 진료도 이뤄진다. 추후 진료 과목도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추모공원 왼쪽으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 및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인 ‘우언기함홀(우리는 언제나 기억하고 함께 합니다)’이 자리 잡고 있다. 우언기함홀은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를 되짚어볼 수 있는 사진과 기록들로 이뤄진 ‘온힘 기억관’과 세월호 관련 각종 도서들이 비치된 ‘온마음 치유 도서관’으로 구성돼있다.

안산마음건강센터는 확장·이전과 함께 일반인에 대한 진료시설도 확충됐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안산마음건강센터 1층엔 방문자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 및 추모할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마련돼 있다.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우언기함홀 내 온힘기억관에선 세월호 참사 당시 및 이후의 사진과 기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온마음 치유 도서관엔 세월호 참사 이후 발간된 관련 서적들, 특히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직접 펴낸 책들이 비치돼 있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이어 2층부터 4층엔 사무공간과 함께 세월호 피해자 및 유가족들을 위한 각종 시설들이 마련돼 있다. 상담실과 각종 치료실, 명상실은 물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들로 알차게 구성됐다. 특히 세월호 참사 생존 청년들을 위한 공간, 참사 희생자 형제들을 위한 공간 등이 각각 마련돼 있고, 생애주기를 고려해 아이들을 위한 공간 또한 준비돼있다. 또한 개인 또는 가족 단위로 휴식을 취하거나 세미나 등 여러 활동 시 활용할 수 있는 객실도 갖췄다.

이처럼 보다 크고 나아진 시설로 문을 연 안산마음건강센터는 국내 재난·참사 트라우마 심리지원에 있어 선도적인 발걸음을 내디뎌 온 곳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재난·참사에 따른 심리지원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재난·참사에 따른 트라우마와 심리지원 필요성에 대한 인식조차 제대로 형성돼있지 않았던 때다. 참사 당시 다른 분야도 그랬듯, 전국 각지에서 전문가들이 모여들어 비상체제로 심리지원에 나섰고 그것이 10여 년간의 안산온마음센터 운영을 거쳐 지금의 안산마음건강센터 개소로 이어지게 됐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시행착오와 체계 구축, 연구·조사, 제도적·정책적 개선 등은 국내 재난·참사 트라우마 심리지원 체제 마련의 초석이 됐다.

안산마음건강센터 2~4층은 사무공간과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각종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안산마음건강센터는 개인은 물론 가족 단위의 상담도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공간이 구성돼있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안산마음건강센터는 글을 쓰거나 차를 마시며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앞서 살펴봤듯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들은 여전히 큰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안산마음건강센터의 존재가 큰 힘이 되고 있기도 하다. 안산마음건강센터는 기본적으로 세월호 피해자 및 유가족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상태를 세심히 살피고, 필요한 조치나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안산마음건강센터에 등록돼 심도 깊은 사례관리를 받고 있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은 896명이다. 

신체적·심리적 문제의 극복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은 6만3,000회 이상 진행됐다. 초기엔 심리지원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1년째 이어지면서 이제는 대부분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온전한 편안함과 휴식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쉼 프로그램, 사람들과 어울리며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동아리 활동이나 문화예술 활동이 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신체적인 긴장을 풀어주는 치료 및 프로그램은 심리지원 자체에 대해 닫혀있던 마음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신체적 긴장을 풀어주는 치료 및 프로그램은 심리지원에 대해 닫혀있던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주요 계기가 됐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안산마음건강센터에서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심리적·신체적 회복을 돕는 다양한 활동 및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안산마음건강센터 내에는 생존 청년, 단원고 희생자 형제 등을 위한 공간도 각각 마련돼 있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안산마음건강센터 내에는 피해자들의 생애주기를 고려해 아이들을 위한 공간 역시 마련돼 있다. / 사진=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세월호 11주기를 앞두고 안산마음건강센터에서 만난 정해선 부센터장은 재난·참사 발생 시 피해자 및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고 원활한 회복이 이뤄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속하고 확실한 진상규명을 꼽았다. 참사의 원인 및 책임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그 절차 및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피해자 및 유가족의 트라우마 회복은 시작조차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재난·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에 대한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심리지원은 국가에게 부여된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오랜 기간 후유증이 이어지는 트라우마의 특성상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심리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제도적·정책적 현실은 이러한 책임과 필요성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 및 유가족도 자칫 정부 차원의 의료지원이 끊길 뻔 했다. 세월호 피해지원 특별법 상 의료지원금 지급기간은 시행령으로 정해지는데, 당초 지난해 4월을 기해 종료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다행이 2029년까지 5년 더 연장됐지만, 이후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의 고통이 여전함에도 지원이 끊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해선 부센터장은 “트라우마는 평생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트라우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