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1주기] 재난·참사가 남기는 ‘집단 트라우마’… ‘국가적 대응’ 중요
시사위크, 세월호 11주기 재난·참사 트라우마 인식 설문조사 실시 응답자 73.4%, 지금도 참사 당시 사진·영상 접하면 심리적 어려움 느껴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2014년 4월 16일. 국민 모두가 똑똑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날이다. 오랜 세월 많은 국가적 경사와 참사가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는 그중에서도 온 국민의 뇌리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비극으로 꼽힌다. 생중계된 침몰 과정, ‘전원구조’라던 오보, 희생자의 대부분을 차지한 수학여행을 떠나던 고등학생들, ‘가만히 있으라’며 제대로 취해지지 않은 구조·탈출 조치들, 그리고 여전히 이뤄지지 않은 진상규명과 책임 회피, 추악한 혐오까지. 세월호 참사는 직접적인 당사자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상처를 남겼다.
◇ 응답자 73.4% “지금도 세월호 보면 심리적 어려움 느껴”… 인식 제고 급선무
대형 여객선이 기울어 침몰하던 모습, 선수만 떠있던 세월호, 학생들을 비롯한 참사 피해자들의 마지막 모습, 참사를 추모하기 위한 노란리본들. 11년 전 우리 모두가 마주했던 세월호 참사의 장면들이다. 세월호 참사는 당시 대한민국을 큰 슬픔에 빠뜨렸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슬픔은 많은 국민들 마음 한편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시사위크가 168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당시 슬픔과 충격, 불안, 우울감, 분노, 죄책감, 무력감, 공포, 회피, 수면장애 등 심리적·정신적·정서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자는 82.7%(139명)를 차지했다.
또한 이 중 73.4%(102명)는 11년이 지난 지금도 참사 당시 사진이나 영상, 참사 관련 내용 등을 접하면 심리적·정신적·정서적 어려움이 느껴진다고 응답했다. 참사 당시와 비교했을 때 어려움의 정도에 대해선 48.2%가 ‘많이 괜찮아졌다’, 23.7%가 ‘이제는 어려움이 없다’고 응답했지만, ‘조금 괜찮아졌다’와 ‘그때와 같다’는 응답도 각각 23%, 5% 나왔다.
한 응답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사진 또는 영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응답자는 “감정적으로 힘들어지다보니 세월호 관련 내용을 피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뿐 아니다. 이태원 참사나 제주항공 참사 등 각종 참사가 발생했을 때 심리적·정신적·정서적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체 응답자의 73.8%(124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재난·참사가 직접적인 당사자에 대한 트라우마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집단 트라우마’를 안겨준다는 점을 보여주는 설문 결과다. 물론 재난·참사 트라우마가 모두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그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 다만, 개인적인 원인이 아닌 재난·참사에 따른 트라우마라는 점에서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트라우마도 그렇지만, 재난·참사 트라우마의 경우 본인 스스로 이를 인지하고 필요한 조치에 적극 나서는 것이 더 쉽지 않다. 따라서 개인에게 더 큰 트라우마 피해를 남기고, 사회적으로도 더 큰 문제 및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 역시 국가 차원의 대응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 중 81%(136명)는 재난·참사 발생 시 국가적 차원의 트라우마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의 재난·참사 트라우마 대응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체계 또한 마련되기 시작했다. 2018년 국립정신건강센터 산하에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연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국 각 권역별로 트라우마센터가 운영되고 있고, 참사 발생 시 정부 차원의 대응 및 지원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아직은 기간이 짧은 만큼, 개선 및 향상이 필요한 부분도 많다. 그중에서도 재난·참사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제고가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이는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전체 응답자의 60.1%(101명)는 재난·참사 트라우마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답했다. ‘전혀 모른다’는 응답도 6.5%(11명)였다. 반면,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33.3%에 그쳤다.
또한 ‘재난·참사 트라우마’를 예방 및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것이 가장 필요한지(복수응답)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56.5%가 ‘재난·참사 트라우마 및 대응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를 꼽았다.
‘재난·참사 트라우마’ 인식 제고는 우선 제도적·정책적 개선 및 향상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개개인의 보다 효과적인 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재난·참사 트라우마’ 피해 확대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재난·참사 관련 게시물과 혐오성 댓글, 가짜뉴스 등은 ‘재난·참사 트라우마’를 키우는 중대 요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이태원 참사 당시 SNS를 통해 참상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재난·참사 트라우마’를 키운 바 있으며, 혐오성 댓글 등으로 참사 피해자들이 2차 가해를 당하는 일도 지속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재난과 참사를 겪어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재난·참사가 발생 및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재난·참사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재난·참사 예방 못지않게 발생 후에 대한 대비도 철저를 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