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저항보고서㊱] 저어새, 멸종 문턱서 살아남은 희망의 날갯짓

2025-04-24     박설민 기자
‘저어새’는  과거 1950년대 만 해도 저어새는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흔히 볼 수 있는 물새 중 하나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저어새는 개체수가 크게 감소했다. 주요 서식지인 갯벌이 매립지 건설, 간척사업으로 사라지면서다./ 사진|인천=박설민 기자

시사위크|인천=박설민 기자  이른 새벽, 안개가 주변을 가득 메운 저수지에 커다란 흰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이를 신호로 주변의 새들도 동시에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가 넘는 새들의 날갯짓에 잔물결 하나 없이 거울 같았던 수면이 흔들렸다.

이 새들의 이름은 ‘저어새’다. 중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우리나라는 매년 봄이 되면 찾아와 번식을 한다. 때문에 과거 1950년대만 해도 저어새는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흔히 볼 수 있는 물새 중 하나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저어새는 개체수가 크게 감소했다. 주요 서식지인 갯벌이 매립지 건설, 간척사업으로 사라지면서다. 현재 인천시, 국립생태원 등 지자체와 연구기관부터 시민들까지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에 힘쓰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 매년 한국 찾는 봄 손님 ‘저어새’

“무던한 듯 예민한 친구들이에요. 조심히 접근해야 만날 수 있어요.”

지난 17일 오전 7시, 인천 송도에 위치한 저수지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5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저어새 네트워크’ 소속의 연구자 및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물새 서식지 모니터링, 번식지 환경 보호, 저어새에 대한 인식 개선 등을 수행한다. 저어새 네트워크와 함께 국립생태원, 한국물새네트워크 관계자들도 모니터링에 참가했다.

이날 저어새 네트워크 활동가들이 모인 장소는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위치한 남동유수지다.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를 수도권 지역에서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이곳에 저어새들을 위한 2개의 인공섬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매년 3월이 되면 저어새들이 이곳에 모여 알을 낳는다. 2009년 작은 섬에서 처음 번식이 확인된 후, 2018년 큰 섬을 추가로 만들었다.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위치한 남동유수지의 인공섬에서 날아오르는 저어새의 모습./ 박설민 기자

여름 철새인 저어새는 한 번에 3~5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새끼 부화는 4월 말 정도에 이뤄지며 새끼가 성체가 되는 여름 8월경 이곳을 떠난다. 이후 10월 정도까지 한국에서 머물다 겨울이 되면 홍콩, 대만, 일본 등 지역으로 이동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저어새는 280여쌍, 태어난 새끼는 500여마리라고 한다.

저어새는 눈결처럼 하얀 깃털과 대조되는 검은색 주걱모양 부리를 가지고 있다. 약 60~80cm 정도의 큰 몸집에 길고 가느다란 다리, 넓은 날개가 특징이다. 저어새는 이 긴 다리로 갯벌과 물가를 걸어 다니며 먹이 사냥을 한다.

이때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물속에 집어넣고 휘저어 작은 민물고기, 개구리, 올챙이, 곤충, 수생식물과 열매 등을 사냥한다. 마치 냄비 속에 뜰채를 넣어 휘젓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이 같은 사냥법 때문에 ‘저어새’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영문명인 ‘black faced spoonbill’도 ‘검은 얼굴의 숟가락 부리’라는 의미다.

권인기 저어새 생태학습관 관장은 “저어새는 주로 얕은 바닷가나 갯벌 근처에 서식하는데 남동유수지 근처엔 갯벌과 바닷가 등이 있어 최적의 서식지 중 하나”라며 “매년 수백마리의 저어새가 남동유수지 인공섬을 찾아 번식하는 만큼 이를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저어새 개체수 유지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남동유수지에는 저어새들을 위한 2개의 인공섬이 마련돼 있다. 매년 3월이 되면 저어새들이 이곳에 모여 알을 낳는다./ 박설민 기자
인공섬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저어새들의 모습./ 박설민 기자

◇ 저어새 둥지, ‘민물가마우지’를 막아라

연구자들의 안내를 따라 고무보트에 탑승한 후, 저어새들의 번식지로 이동했다. 이혁재 저어새 네트워크 소속 연구원에 따르면 저어새들은 성격이 무던한 듯하지만 동시에 예민하다고 했다. 특히 지금은 알을 낳아 더욱 예민한 시기라 빠른 시간 내 모니터링을 끝내고 철수해야 했다.

인공섬 내부로 들어서자 저어새들이 만든 둥지들이 눈에 띄었다. 일반적으로 새들이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드는 것과 달리, 저어새의 둥지는 나무 위가 아닌 돌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여러 개의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둥지에는 3~4개 정도의 알들이 있었다. 누르스름한 색상의 흰색 알들은 계란보다 약간 더 큰 정도의 크기였다.

이혁재 저어새 네트워크 소속 연구원은 “저어새들은 지상에 둥지를 트는 새들이기 때문에 쥐, 고양이, 너구리 등 천적에 매우 취약하다”며 “때문에 남동유수지의 수심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저어새 보호에 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부지런히 알의 갯수, 둥지 상태를 파악하던 연구원들은 갑자기 인공섬 꼭대기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 다음 안테나처럼 보이는 쇠막대기에 커다란 연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연은 수리부엉이, 혹은 매나 황조롱이와 같은 맹금류 모양이었다.

민물가마우지를 쫓아내기 위한 맹금류 모양의 연. 민물가마우지는 저어새와 서식지, 둥지를 짓는 지역이 겹친다. 이로 인해 저어새 복원 및 번식에 악영향을 줄 수 있있다./ 박설민 기자

이는 ‘민물가마우지’를 쫓아내기 위한 조치였다. 민물가마우지는 저어새와 서식지, 둥지를 짓는 지역이 겹친다. 이로 인해 저어새 복원 및 번식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민물가마우지는 가마우지목 가마우지과에 속하는 물새다. 주로 강가, 논밭 근처에서 서식하지만 바닷가, 갯벌에서도 서식한다. 1990년대 만해도 200~300여마리밖에 한국에 없었던 철새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국내에 정착하기 시작해 순식간에 개체수가 불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약 3만마리에 육박하는 민물가마우지가 국내 바닷가, 갯벌 등을 점령하고 있다. 때문에 2023년부터 유해야생동물로 지정, 포획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무조건 포획하거나 사살할 수는 없으며 기초 지자체장 허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혁재 연구원은 “민물가마우지는 천적인 참수리, 수리부엉이 등 대형 맹금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종의 허수아비처럼 연을 만들어 저어새 둥지섬에 설치했다”며 “현재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도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어새는 한 번에 3~4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사진은 남동유수지 인공섬에 낳은 저어새 알의 실제 모습./ 박설민 기자
일반적으로 새들이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드는 것과 달리, 저어새의 둥지는 나무 위가 아닌 지상에 둥지를 튼다./ 박설민 기자

◇ 멸종위기종에서 개체수 회복 성공… 매립지 공사 등은 여전히 ‘위험요소’

이처럼 저어새를 보호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멸종위기종이기 때문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저어새는 ‘멸종위기(EN)’ 등급으로 분류됐다. 이는 야생에서 멸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되는 생물종에게 부여되는 등급이다.

실제로 1950년대 이후 개체수가 급감한 저어새는 국내서 1988년 288마리까지 줄었다. 새만금 간척사업 등으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다. 실제로 간척사업은 물새 개체수 감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연구진이 2011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07년 중국 황해 보하이만의 간척사업이 시작된 후 물새 이동은 3%에서 2010년 23%로 증가했다. 이는 물새들이 서식지 파괴로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개체수가 급증했음을 의미한다.

저어새 복원 연구기관은 경북 영양군에 위치한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다. 이곳에서는 저어새 개체수 증가를 위한 복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박설민 기자

이에 저어새 네트워크, 저어새와 친구들 등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정부 연구기관 차원의 복원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환경부에서는 1968년 저어새를 천연기념물 제205-1호로 지정해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현재 대표적인 저어새 복원 연구기관은 경북 영양군에 위치한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다. 이곳에서는 저어새 개체수 증가를 위한 복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지난 2023년 7월에는 비행·사냥·대인기피 등의 훈련을 거친 뒤 3마리가 자연 방사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저어새 개체수는 빠른 회복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저어새의 전 세계 개체수는 약 6,900여마리다. 300마리 수준으로 개체수가 줄었던 37년 전보다 개체수가 2,200% 증가했다. 이 중 90%에 해당하는 2,000여쌍이 한국에서 서식한다. 즉, 한국의 저어새를 보호하는 것이 곧 전세계 저어새 전체를 보호하는 것이다.

박종현 한국물새네트워크 연구원은 “국립생태원과 시민단체의 지속적 노력으로 많은 수의 저어새 개체수 복원에 성공했다”며 “저어새는 상위 포식자로서 저수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하천, 해안 내 생물 다양성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종이기에 개체수 보호 및 유지가 필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저어새를 비롯한 물새들의 서식 환경은 좋지 않은 실정이다. 인천 송도 지역 내 매립 공사가 꾸준히 진행되면서다. 특히 송도 10공구 지역에서 진행 중인 신규 항만 건설 등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공사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갯벌이 사라지면서 지역 생태계가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박설민 기자

다만 여전히 저어새를 비롯한 물새들의 서식 환경은 좋지 않은 실정이다. 인천 송도 지역 내 매립 공사가 꾸준히 진행되면서다. 특히 송도 10공구 지역에서 진행 중인 신규 항만 건설 등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공사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갯벌이 사라지면서 지역 생태계가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혁재 연구원은 “항만 건설 시작 전 대체 습지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저어새 네트워크 등 시민단체에서 했지만 회의로 인해 지연됐다”며 “이로 인해 공사가 먼저 시작돼버렸고 물새들은 서식지를 잃어 송도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어새 뿐만 아니라 알락꼬리마도요 등 물새들은 휴식 공간이 없으면  쉬지 못해 지쳐 죽는 경우도 많다”며 “이 같은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대체 습지 등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