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트럼프 ‘노벨상’에 김정은 숟갈 올라갈까
북한학 박사
미국이 지난 6월 21일(현지시간) 포르도를 비롯한 이란 핵 시설을 타격하면서 평양 쪽으로 시선이 쏠리고 있다. 김정은 체제 들어 핵 개발을 노골화 하고 있는 북한을 대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력사용을 할지 모른다는 측면에서다.
호사가들의 이런저런 관측에도 불구하고 평북 영변을 비롯한 북한의 핵 관련 시설을 제거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란이 400kg 정도의 고농축우라늄(HEU)을 확보한 수준으로 추정되는 ‘개발 단계’인데 비해 북한은 이미 상당수의 핵을 보유한 사실상의 ‘핵 국가’가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는 것이다.
핵을 가진 북한을 GBU-57을 비롯한 슈퍼 벙커버스터로 공격한다는 건 자칫 한반도 뿐 아니라 미국 본토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위기상황이 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서 이란 핵 시설까지 1,500~1,700km 떨어져 있는 것과 달리 북한 핵 시설과 서울은 270km에 불과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보복에 직면할 것이란 관점에서다.
‘핵을 가졌으니 못 건드린다’는 한국과 서방의 전문가들 분석에 평양의 김정은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면의 미소를 짓고 있을까.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짚어봐야 할 이런저런 숨겨진 단면이 있고, 역지사지를 해보는 게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니들이 내 입장 돼 봤냐. 어찌 그리 쉽게들 말하느냐”며 ‘속앓이’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이 오랜 기간 핵 개발을 추진해 상당 수준에 오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06년 첫 핵실험을 시작으로 모두 6차례의 과정을 거쳤으니 기술적 완성도도 구비됐을 것이란 게 핵 전문가들의 평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취임식에서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 칭한데 이어 3월 말에는 백악관 기자들에게 ‘큰 핵 국가’(big nuclear nation)라고 일컬었던 데서도 북핵을 보는 미국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이란 핵을 보는 워싱턴의 시선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에게 이란 핵시설을 때리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악몽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군이 이란의 방공망 무력화를 위한 포격을 한 직후 트럼프는 국제사회의 예상을 깨고 전격적으로 3곳의 이란 핵 시설을 정밀 타격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파워 엘리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건 이스라엘이 공습에 앞서 군 핵심 수뇌부를 제거한 대목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정보기관 모사드가 축적해온 첩보에다 실시간 위치확인을 통해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호세인 살라미, 부사령관 골람 알리 라시드 등을 거의 몰살시키다시피 했다.
심지어 페레이둔 압바시 등 핵물리학자까지 폭사시켜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군과 핵 과학자 등 20여명이 사망함으로써 이란은 이어진 미국의 핵 시설 타격에 아무런 손을 쓰지 못했고, 핵 개발 일정을 복구하는 데도 큰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까지 나서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 통에 이란 지도부가 동요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이런 소식을 접한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을 공산이 크다.
핵을 가지고 있거나 보유하고 있다고 상당히 믿을 만한 상황인 것과 그것을 쥐고 있는 측이 유사시 핵을 쓸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라며 혼잣말을 할지 모른다.
3년 넘게 끌고 있는 우크라이나전쟁에도 불구하고 전술핵조차 사용할 엄두를 못내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보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점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상주 외국인은 지난해 말 전체 인구의 5%를 넘어 260만명에 이르고 있다. K-컬처에 매료돼 한국 관광길에 나선 세계 각국의 사람들로 서울 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이 넘쳐난다. 김정은 위원장이 급발진해 핵 버튼을 누르는 상황이 된다 해도 이들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부담이다.
한마디로 북한 입장에서는 핵을 쓸 엄두를 내기 어렵고, 쓴다 해도 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에 처할게 분명하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3대에 걸쳐 내려온 가업(family business)을 상장폐지하는 격이 된다. 자신이 애지중지 내세워온 딸 주애와 부인 이설주 등 일가의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맥락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딜레마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트럼프가 북한의 핵 시설을 타격하거나 하는 이란식 해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협상을 통해 ‘비핵화’ 혹은 ‘핵 동결이나 인정’을 선택하는 리비아식 솔루션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얼마 전 뉴욕 채널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의 친서 교환 등을 타진했지만 북한이 거절한 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김정은 위원장과의 브로맨스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란 타격 사태의 전말을 되짚어보면 김정은 위원장의 심장은 쫄깃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과의 핵 협상을 목전에 두고 공습이 이뤄졌고, 2주간의 시간을 주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곧바로 뒤통수를 쳤다.
향후 미국과의 핵 협상을 통해 ‘핵 국가’로 인정받고 대북제재 해제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을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지도부로서는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이란 사태를 보며 ‘핵을 갖고 있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집착을 키워갈 수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제안을 계속 거절하며 이런저런 조건을 내세우다가는 이란 꼴이 날 수 있다. 또 회담테이블에 김정은 위원장이 앉는다 해도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처럼 ‘영변+α’를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발뺌으로 일관하다가는 또 된통 당할 수 있다.
미합중국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4년 단임이다. 그런데 벌써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권력과 재력 등 세상 다 가진 남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은 유일한 꿈은 노벨상이다. ‘중동 평화’만으로 다소 부족한 듯한 부분을 북한 핵 문제 해결이나 한반도 평화로 채운다면 노벨평화상은 따 논 당상이라 판단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 놓인 캘린더를 보며 자기만의 시간표를 짜놓았을 게 자명하다. ‘노벨, 노벨’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도 있다. 체제의 명운을 걸고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한 모양새다. 소리 소문 없이 이란 영공으로 들어가 핵 시설 3곳을 쓸어버리고 유유히 귀환한 B-2 스텔스 폭격기와 벙커버스터의 얘기가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납량특집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