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잘못? ‘제주항공 참사’ 잠정 결론에 반발여론 ‘부글부글’
국토부 사조위 “엔진결함 無… 조종사, 엔진 잘못 끈 것 같다” 잠정결론 다른 부분 조사 여전히 진행 중… 참사 유가족·제주항공조종사노조 ‘분노’ 제주항공조종사노조 “책임 전가 악의적 프레임 씌우기, 정식보고서도 없어” “사조위, 섣부른 결론 유도… 조종사 과실 기정사실처럼 언급, 희생양 만들기”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항공기의 엔진 결함은 없었고, 조종사가 엔진을 잘못 끈 것 같다는 잠정 결론을 내려 반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조위는 지난 19일 무안공항에서 참사 유가족에게 사고가 난 항공기의 엔진 조사와 관련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앞서 지난 5∼6월 사조위는 사고 항공기의 양쪽 엔진을 프랑스 파리로 옮겨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연방항공청(FAA), 보잉 등과 함께 정밀조사를 진행했다.
유족 협의회에 사전 공유된 조사 결과에는 ‘사고 항공기 조종사가 조류 충돌(버드스트라이크)로 손상된 오른쪽 엔진이 아닌 왼쪽 엔진을 정지시키면서 양쪽 엔진이 모두 출력을 상실했고 블랙박스와 전원이 모두 나갔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조종사가 비상 절차를 수행하며 양쪽 엔진을 모두 꺼 출력을 잃었고 랜딩기어(비행기 바퀴)도 내려오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 셈이다.
이에 유족들은 사고 항공기 조사가 최종적으로 결론 난 것이 아님에도 사조위가 확정적인 표현으로 책임을 조종사에게 돌리고 있다며 발표를 반대했다. 결국 사조위의 언론 브리핑은 취소됐다.
문제는 IDG(엔진 전력 장치)를 포함해 사고 항공기의 다른 부품들에 대한 조사가 아직까지 진행 중이고, 현재까지 사고 항공기와 관련한 정식 사고조사 보고서도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국토부 사조위가 ‘사망한 조종사의 책임론’으로 몰고 가며 섣부른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제주항공조종사노동조합도 “국토부 사조위의 편향된 조사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제주항공조종사노조 측은 “항공기 사고는 단일 원인이 아닌 다양한 기여요인이 복합 작용해 발생하는 복잡한 사건인데, 그럼에도 사조위 관계자는 ‘조종사가 조류 충돌로 손상된 오른쪽 엔진을 꺼야 했는데, 왼쪽 엔진을 꺼서 블랙박스와 전원이 모두 나갔다’고 언급했다”며 “사조위는 현장조사 직후 ‘양쪽 엔진 모두에서 조류 충돌 흔적이 발견됐다’고 발표된 바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작동 중인 왼쪽 엔진을 껐다’는 표현을 사용해 마치 왼쪽 엔진은 아무 문제가 없던 것처럼 오도하고, 사고 원인을 조종사의 단순한 ‘오판’으로 단정지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조사 정식보고서도 없는 상황에 사조위가 섣불리 결론을 유도하는 발언은 원하는 방향의 결론을 내기 위한 자의적 확대 해석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고, 조종사 과실을 기정사실처럼 언급한 것은 중대한 문제”라며 “이는 심각한 조사 왜곡이고, 조종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악의적 프레임 씌우기”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조위는 본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FDR(비행기록장치) 및 CVR(음성기록장치) 등에 기록된 구체적 근거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사조위의 주장이 정당하려면, 조종사가 2번 엔진(오른쪽 엔진)을 차단하고 1번 엔진(왼쪽 엔진)만으로 비행을 지속했을 경우 정상적으로 착륙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과학적, 기술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조류 충돌로 동일하게 손상된 1번 엔진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데이터, 시뮬레이션, 시험 결과 없이 조종사의 판단만 문제 삼는 것은 전형적인 책임 회피성 희생양 만들기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제주항공 여객기 버드스트라이크 사고를 참사로 이어지게 만든 원인인 무안공항 활주로 너머 로컬라이저 둔덕 문제에 대해 정부와 사조위가 침묵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했다.
노조는 “사조위는 사고를 참사로 이어지게 만든 핵심 요인인 활주로 인근 로컬라이저 둔덕 문제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현재도 무안공항을 비롯한 국내 여러 공항에는 로컬라이저 둔덕 등 각종 위험 요소들이 방치된 채 존재하고 있고, 사조위는 이러한 구조적 위험에 대해 ‘긴급 안전권고’를 내려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국토부 조직에는 한마디 경고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에서도 국토부 사조위의 사고조사 발표와 관련해 조만간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