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 '에세이'] H에게-느림의 미학

2025-09-15     최찬식 기자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5개월 가까이 척추관협착증으로 고생하는 동안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에서 읽었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시간이 많았네. “의사가 또 말하기를, 늙은이의 병증은 자연적 노화현상과 구분되지 않아서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늙은이의 병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딱히 병이라고 할 것도 없고 병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다는 말이었는데, 듣기에 편안했다. 늙음은 병듦을 포함하는 종합적 생명현상이다.” 옳은 말 아닌가. 늙은이의 병은 쉽게 낫지 않는 것 같네. 좋아지다가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하지. 그래서 좀 좋아졌다고 안심할 수도 없어. 내 경우처럼 언제 재발할지 모르거든.

5개월 전 처음 발병했을 땐 엉치뼈와 두 다리가 아파서 걷지 못했네. 그래서 1주일 동안 기어다녔지.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자 조금 나아지더군. 그래서 다시 카메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50일 전에 재발하고 말았지. 이번에는 똑바로 누워 잘 수가 없었어. 걷는 게 힘들었지만, 이전처럼 기어다닐 정도는 아니었지. 앉아 있을 때는 통증이 비교적 심하지 않아서 1주일 정도 앉은 자세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어. 주사 치료를 받으니 누워서 잠은 잘 수 있게 되더군.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젠 5분 이상 앉아 있을 수 없게 된 거야. 화장실에서나 식탁에서 좀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서면 허리가 아파서 똑바로 설 수가 없었어. 그러니 운전도 할 수 없었지.

난생처음 오랜 기간 아프다 보니 답답하더군, 마음이 급해지니 짜증도 자주 나고. ‘고독하지만 자유롭게’라는 좌우명으로 평생 살았던 사람이 5개월 동안 집에 묶인 신세가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감옥이 따로 없었어.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 올해 여름은 하는 일 없이 잘도 간다고 투덜거렸더니 아내가 신소리하더군. “빨리 나아서 돈 벌어 오라는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 서둘러?” 얼마나 무안했는지 몰라. 옳은 말이라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지. 자기 몸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붕새처럼 창공으로 비상을 꿈꾸는 내가 좀 한심하기도 했어.

아내 말이 맞아. 빨리 나아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은 급한지…. 올해 여름에 보지 못한 꽃들은 내년에 실컷 보면 되고, 올해 마무리하지 못한 사진 작업은 내년에 마치면 되는데 왜 그렇게 참지 못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지…. 느림을 혐오하고, 해찰하거나 빈둥대면 낙오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래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빨리빨리’ 병에 걸린 것 같아 씁쓸하더군.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좀 나아지면 정말로 느리게 살 걸세.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살 거야. 바닷가 모텔에 며칠 묵으면서 해가 뜨고 지는 모습도 보고, 오솔길을 달팽이 걸음으로 걸으면서 길가에 핀 꽃들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는 조용한 카페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 쓰잘머리 없는 말도 주고받고, 술 한잔 마시면서 손뼉 치며 노래 부르며 춤도 추면서 남은 노년을 보내기로 작심했네.

마지막으로 류시화 시인이 엮은 『마음챙김의 시』에서 만났던 시 하나 소개하겠네. 미국의 아동심리학자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웨더포드(David L. Weatherford, 1952~2010)의 <더 느리게 춤추라>일세. 원제는 <Slow Dance>이지. 좀 길지만 쉬운 시이니 천천히 읽어보시게. 인터넷 검색해서 젊은 가수 아이유의 목소리로 듣는 것도 좋아.

회전목마를 타는 아이들을/ 바라본 적 있는가./ 아니면 땅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귀 기울인 적 있는가.// 펄럭이며 날아가는 나비를 뒤따라간 적은,/ 저물어 가는 태양빛을 지켜본 적은.//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하루하루를 바쁘게 뛰어다니는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서도/ 대답조차 듣지 못할 만큼./ 하루가 끝나 잠자리에 누워도/ 앞으로 할 백 가지 일들이/ 머릿속을 달려가는가.//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아이에게 말한 적 있는가,/ 내일로 미루자고./ 그토록 바쁜 움직임 속에/ 아이의 슬픈 얼굴은 보지 못했는가.//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그토록 서둘러 달려갈 때/ 그곳으로 가는 즐거움의 절반을 놓치는 것이다./ 걱정과 조바심으로 보낸 하루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지는 선물과 같다.// 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속도를 늦추고,/ 음악에 귀 기울이라./ 노래가 끝나기 전에.

가슴 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소중한 충고 아닌가. 싫든 좋든 우리가 준비한 음악은 곧 끝날 걸세. 그러니 젊었을 때 디스코를 추듯 너무 격렬하고 빠른 속도로 몸을 흔들 수는 없지. 음악에 귀 기울이면서,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아주 천천히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