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 충돌, 국회 파행 뇌관 되나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가 16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을 야당 간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무기명 표결로 부결시키면서 국회 운영 전체에 파장을 예고했다. 여당이 야당 몫 간사 선임을 일방적으로 막아선 것은 헌정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법사위가 다시 여야 충돌의 최전선으로 부상한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입법기관이 사법리스크를 무기 삼아 치킨게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 치킨게임 된 ‘사법리스크’… ‘법정의 연장전’ 비판
이날(16일) 법사위 전체회의는 시작부터 여야가 격돌했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간사 선임안을 안건으로 상정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간사 선임은 관례로 해당 정당이 지명한 인사를 추인해 왔지, 표결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표결은 강행됐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무소속 최혁진 의원 등 10명이 참여해 전원 반대표를 던졌고, 결국 나 의원은 간사 자리를 얻지 못했다. 추미애 위원장은 “총투표수 10표 중 부 10표로 나경원 의원 간사 선임의 건은 부결됐다”고 선언했다.
관례를 깨뜨린 절차라는 점에서 충격은 컸다. 법사위 간사는 여야 협의와 조정의 최소한의 통로였다. 이를 다수결로 부결시킨 것은 결과적으로 ‘야당 간사가 없는 법사위’라는 기형적 구조를 초래한다. 국회 운영의 기본 질서가 흔들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표결 전후로 여야는 거친 공방을 주고받았다. 민주당은 나 의원이 전날 이른바 ‘패스트트랙 사건’으로 징역 2년을 구형받은 사실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내란을 옹호하고 수사 대상이 된 현역 의원이 법사위 간사를 맡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남편이 법원장인데 아내가 법사위 간사라니 부적절하다”는 이해충돌 주장을 내놨다.
국민의힘은 즉각 반발했다. 곽규택 의원은 “상대 당이 추천한 간사 후보를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건 국회 운영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행동”이라며 “결국 민주당이 법사위를 독주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의원 본인도 발언권을 얻어 “간사는 표결 대상이 아니라 야당이 정하면 존중하는 것이 관례”라며 “민주당이 이제는 의회 독재에 사법부 장악까지 시도하려 한다”고 맞받았다.
여야의 충돌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졌다. 박지원 의원의 ‘남편’ 발언에 곽규택 의원이 “(박 의원님의) 아내는 뭐 하시냐”라고 응수하자, 박 의원은 “돌아가셨다”고 답했고, 회의장은 고성과 막말이 오가는 아수라장이 됐다. 정치적 논쟁이 도덕적 공세와 인신공격으로 치닫는 모습에 대해 회의장을 지켜본 이들조차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관례’를 깨뜨린 순간 그 부메랑은 언젠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 오늘 민주당이 나 의원을 막아선 사례는 훗날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됐을 때 되갚아줄 명분이 된다. 이제 국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힘의 정치’가 지배하는 장으로 변질될 위험을 안게 된 셈이다.
이번 대치의 본질은 ‘사법리스크’였다. 민주당은 나 의원의 재판을 이유로 간사 자격을 문제 삼았고, 국민의힘은 곧장 “사법 리스크가 더 큰 이재명 대통령부터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반격했다. 사법리스크가 정치적 약점을 넘어 여야가 서로를 공격하는 치킨게임의 핸들이 돼버린 셈이다.
당분간 국회에서 정치적 후폭풍은 거세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전례 없는 제도 파괴란 점과 의회 독재란 프레임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고, 국힘은 자신들의 공격 칼로 삼았던 사법리스크가 도리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상황을 직면하게 됐다. 법조계 일각에서 “정치권에서 사법을 전면으로 끌어들여 정쟁의 무기로 삼는 순간, 국회는 본연의 입법 기능을 잃고 ‘법정의 연장전’이 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