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별 치매 발병 가능성, 뇌 ‘유전자’에 달렸다
KAIST-IBS 연구진, 뇌속 ‘별아교세포’ 발달과정과 뇌 면역 반응 조절 연관성 규명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국내 연구진이 개인마다 치매 등 뇌 질환의 발병 가능성이 다른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향후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질환과 뇌 면역 반응 치료 전략을 새롭게 정의할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생명과학과 정인경 교수팀이 별아교세포(astrocyte) 발달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가 성인기 뇌 면역 반응 조절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 정원석 부연구단장(겸 KAIST 생명과학과 교수)와 공동 진행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유전자 차이가 어릴 때 뇌가 자라나는 과정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치매 등 뇌 질환이 생길 때는 어떤 사람이 더 잘 걸리는지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이 문제의 해답을 찾고자 연구팀은 쥐 모델을 활용해 뇌·척수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별아교세포의 발달 시기별 유전자 조절 프로그램을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NR3C1(Glucocorticoid Receptor)’ 유전자가 출생 직후 발달 단계에서 장기적 면역 반응 억제의 핵심 조절자임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최신 ‘3차원 후성유전체 분석 기술(DNA에 유전정보를 커짐·꺼짐분석 기술)’을 이용했다. 이를 통해 별아교세포 발달 과정에서의 전사체, 염색질 접근성, ‘3차원 게놈 상호작용(DNA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접히고 서로 만나는지를 보는 기술)’을 통합 분석했다.
실험 결과, 별아교세포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55개의 중요한 유전자 조절 단백질(전사인자)을 찾아냈다. 그중에서도 NR3C1이라는 유전자가 아기 뇌가 처음 발달할 때 가장 중요한 스위치” 역할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유전자가 없다고 해서 어릴 때 뇌 발달이 크게 망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 뇌에 자가면역성 질환(몸의 면역체계가 자기 뇌를 공격하는 병)이 발생하자 NR3C1이 없는 경우 뇌가 과도하게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병이 훨씬 심해졌다. 즉, NR3C1은 아기 뇌에서 면역 스위치를 미리 켜둘 준비를 하는 엔진 예열 버튼인 ‘후성유전적 프라이밍’ 제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덕분에 성인이 된 뒤 뇌가 과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지켜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정원석 IBS 부연구단장은 “별아교세포의 면역 기능이 후성유전적 기억에 의해 조절된다는 사실을 처음 규명했다”며 “향후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 질환의 원인 규명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경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별아교세포 발달의 특정 시기가 성인기와 노인기 뇌 질환의 취약성을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게놈 3차원 구조 기반 연구가 다발성경화증(MS) 등 면역성 뇌 질환의 새로운 발병 원리 이해와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22일자로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