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남극, 쿨한 한국⑧] 기후의 적신호: ‘국민 횟감’의 위기
시사위크|동해·서해·남해·제주=권신구·정소현·김두완·이미정·박설민 기자 화면을 통해서 접하는 장면들은 기후변화가 먼바다 너머의 일처럼 느끼게 한다. 그렇다 보니 우리 삶에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는 무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의 삶의 스며들고 있다. 짧아진 봄·가을과 극한의 폭염, 예측할 수 없는 스콜성 폭우와 같은 단순히 날씨의 변화 이상이다. 그 변화는 당장 우리의 밥상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 식탁이 위태롭다
‘국민 횟감’으로 불리는 광어는 80년대만 해도 귀한 횟감이었다. 광어가 부담 없는 횟감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양식’ 덕분이다. 대량생산으로 공급이 원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가격은 낮아졌고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어종이 된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러한 일상의 풍경을 흔들고 있다. 급격히 상승한 수온이 양식장의 적잖은 피해를 안기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24 어류양식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양식 마릿수는 3억3,800만마리로 전년 4억7,700만마리 대비 29.1% 감소했다. 고수온 및 질병 등으로 광어와 우럭 등 양식 어종이 대량으로 폐사한 탓이다.
광어의 경우 지난 2023년 대비 2024년에는 11.2%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우리나라 광어 생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제주는 피해가 극심했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작년 77개소에서 약 220만 마리가 폐사했다”고 말했다. 오동훈 제주어류양식수협 상임이사는 “(기온이) 30도씨가 넘어버리면 어류들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1시간 이내에 폐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며 “폐사가 일어나면(시작되면) 전량 폐사가 된다(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 사라진 한치, 먹거리가 흔들린다
고수온으로 인한 피해는 비단 광어의 문제만이 아니다. 제주의 주력 어종이던 한치의 경우도 인근 해역에서 자취를 감췄다. 제주 조천읍 함덕어촌계 이경재 계장은 “(7월은) 한치가 제철인데 (잡히는 게) 몇 마리뿐”이라고 토로했다. 당장 유류비조차 해결할 수 없다 보니 조업 자체를 포기하는 배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계장은 “작년에도 안 나는(잡히는) 편이었지만, 올해는 제철에 몇 마리 잡는 것은 아예 없다고 해야 한다”고 했다.
서해에서는 주꾸미와 꽃게의 어획량이 줄어들었다. 김 양식장에도 변화는 시작됐다. 수온이 높아짐에 따라 김을 재배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졌고, 과거에는 10번은 채취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5~6번 정도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게 양식 어민들의 이야기다. 짧아진 재배 기간 만큼이나 품질도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충남 서천군에 위치한 송석어촌계 공무철 계장은 “고품질 김을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이 최소한 두 달은 돼야 한다”며 “기간이 점점 단축되니 좋은 품질이 안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수온으로 인한 어업의 피해는 결국 소비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광어 도매가격은 고수온 피해가 극심했던 지난해 여름 이후 1kg당 1만9,000원 선까지 치솟았고 현재까지도 1만8,000~9,000원 선이 유지되는 상황이다. 오동훈 상임이사는 “원가를 생각하면 2만원은 받아야 한다”며 “그러면 소비자한테 최종적으로 넘어가는 건 10만원이 넘어갈 텐데 부담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무철 송석어촌계장도 “주꾸미가 예전에는 kg에 2~3만원인데 지금은 5~6만원 간다”며 “물건이 안 나오면 소비자가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뾰족한 대안이 없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응할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주의 경우 ‘지하 해수’를 활용해 온도를 조절하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지만 부존량이 적은 데다가, 지하 해수가 존재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있다는 점 등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단순히 수온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고수온으로 인해 바닷물에는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질병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온에 적합한 어종과 양식법을 개발한다고 해도 이를 수익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당장 새로운 수산물을 ‘소비할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생산 단가조차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일부 어민들은 어업을 내려놓고 관광 산업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 어민들 모두 변화의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지만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바다 너머의 일이 아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의 식탁에 벌써부터 균열을 내고 있다. 끓는 바다를 단순히 어민들의 애환으로만 치부한다면 그 파고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광어가 더는 ‘국민 횟감’으로 평가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지속 가능한 바다를 위해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