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 '에세이'] H에게-경국지색의 꽃 ‘옥잠화’
지난 두 달 동안 척추관협착증으로 고생하면서 집 밖으로 멀리 나갈 수가 없었다는 말은 이미 몇 번 했지. 집안에서도 가파른 계단이 있는 옥상에는 올라가기 힘들어서 마당에서 조심조심 걸음마를 막 시작하는 아이처럼, 걷는 시간이 많았네. 다행히 마당 한쪽 그늘진 곳에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옥잠화 화분이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어. 플라스틱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손바닥만 한 초록색 잎으로 몸을 가린 옥잠화랑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았네. 폭염이 계속될 때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흠뻑 주기도 했어.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인 소행성 B612에서 길들였던 장미꽃을 생각하면서 혼자 웃기도 했지. 길들인다는 게 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어.
우리 옥잠화는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까다롭게 굴지는 않았네. 바람은 질색이니 바람막이해야 한다고 조르지도 않았어. 8월이 되자 잎맥을 뚜렷하게 드러낸 넓은 잎들 사이에서 꽃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네. 모두 여섯 개였어.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면서 길들인 덕분인지 몰라도 다른 해보다 많은 꽃대를 내밀었네.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매일 아침 달팽이 걸음으로 조심조심 다가가서 밤새 꽃대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했네.
8월 중순부터 20~30cm 높이로 자란 꽃대 끝에서 하얀 옥비녀가 보이기 시작했네.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한 거야. 옥잠화(玉簪花)의 다른 이름은 ‘옥비녀꽃’일세. 옥잠화는 꽃이 아니라 꽃망울이 비녀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지. 꽃이 피기 직전의 통통한 꽃망울은 어렸을 적 우리 어머니들이 쪽 찐 머리에 꽂았던 하얀 비녀처럼 생겼네. 그런 비녀를 보지 못하고 자란 요즘 아이들은 옥잠(玉簪)이란 말이 어려울 수밖에 없을 거야.
올해는 기후 위기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나와 노는 게 좋아서 이별의 시간을 조금 늦추고 싶어서였는지, 다른 해보다 조금 늦은 8월 30일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네. 9월 22일까지 24일 동안 총 155송이 꽃을 보여주었어. 하룻밤에 열네 송이의 꽃을 한꺼번에 피운 날도 있었네. 20년 가까이 함께 살고 있지만, 올해처럼 이렇게 많은 꽃을 보여준 것은 처음일세. 하룻밤에 14송이가 핀 것도 처음이고.
옥잠화는 해가 진 어두컴컴한 밤에 꽃을 피우고, 향기도 한밤중에 가장 진하다는 건 알지? 한 송이 꽃만으로 큰 방을 향내로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강력해. 그러니 작은 마당에 동시에 핀 열네 송이 꽃이 내뿜는 향기가 얼마나 진했을지 상상해 보게나. 그날 밤 일부러 반지하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방에 누워 있었지. 향이 너무 고혹적이어서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었네. 그래서 한밤중에 카메라를 들고 옥잠화 곁으로 다시 갔지. 빛이 충분하지 않은 밤이라 삼각대를 놓고 장노출로 많은 사진을 찍었어.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어둠 속에서 꽃향기에 취해 열네 명의 신선들과 춤을 추며 놀다 보니 새벽이더군. 웬 신선이냐고? 옥잠화의 다른 이름이 백학선(白鶴仙)이야. 하얀 학 같은 신선, 참 멋진 이름이 아닌가. 허리 통증과 제대로 걷지 못해서 생긴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었던 행복한 밤이었네. 언젠가 그날 밤 찍은 옥잠화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은은한 옥잠화 향을 떠올릴 날이 있을 걸세.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옥잠화는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이 땅에서도 예전부터 인기가 꽤 많았던 것 같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원예서인 『화암수록』의 저자 유박(柳璞, 1730~1787)은 옥잠화를 무궁화, 패랭이꽃, 봉선화와 함께 8등 식물로 자리매김하면서, 잎사귀는 ‘빛나고 윤기가 돌며’꽃향기는 ‘맑고 진하다’고 평가했지.
사육신(死六臣)의 일원인 이개(李塏, 1417~1456)와 성삼문(成三問, 1418년~1456)도 옥잠화에 관한 시를 남겼는데, 특히 성삼문은 옥잠화를 경국지색(傾國之色)의 꽃이라고 칭송했네. 얼마나 좋아했으면 한 나라를 흔들 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운 꽃이라고 말했겠는가. <옥잠화>라는 시에서 성삼문은 누구를 위해 그렇게 곱게 단장했냐고 물으면서, 자기처럼 강심장을 가진 사람도 옥잠화의 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녹아버린다고 고백하고 있네. “언연경국색(嫣然傾國色)/ 고목위수용(膏沐爲誰容)/ 아역강장자(我亦剛腸者)/ 간래의이융(看來意已融)” 그러니 성삼문보다 모든 게 부족한 나 같은 한량(閑良)은 어찌하겠는가. 옥잠화 앞에 서면 꽃의 자태와 향기에 취해 절로 무너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