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남극포럼] “남극은 인류 미래를 내다보는 창”

‘제2차 남극포럼: 남극지식대화’ 현장 취재

2025-11-12     박설민 기자
해양수산부는 극지연구소와 11일 서울 중구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제2차 남극포럼: 남극지식대화’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개최된 행사다. 기존 연구자 중심으로 진행했던 포럼을 국민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한국에서 1만7,240km 떨어진 세상의 끝, ‘남극(Antartica)’은 모든 사람에게 꿈같은 장소다.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단순한 예능 방송이나 영화 등에서만 등장할 뿐 실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상히 알기는 어렵다. 지난해 12월 이곳을 직접 취재했던 시사위크 취재팀 역시 아직도 남극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처럼 비밀에 싸인 남극에 대해 알리는 행사를 ‘극지연구소(KOPRI)’가 마련했다. 직접 남극을 방문한 전문가들이 모여 남극에 대한 궁금증, 이곳의 과학자들과 월동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일반 대중들에게 알렸다. 기후변화와 환경 보호, 더 나아가 대한민국 극지과학연구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남극의 불청객 ‘외래종’…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

해양수산부는 극지연구소와 11일 서울 중구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제2차 남극포럼: 남극지식대화’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개최된 행사다. 기존 연구자 중심으로 진행했던 포럼을 국민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는 ‘남극 365일, 사람과 과학이 만나는 곳’이라는 주제로 환경 및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들이 실제 남극에서 겪은 생생한 경험담을 전했다. 발표자는 강승현 극지연구소 연구원, 민준홍 37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 지질대원, 도학원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등이다.

첫 번째 강연자인 강승현 극지연구소 연구원은 ‘남극의 외래종 유입’에 대한 발표를 진행했다./ 박설민 기자

첫 번째 강연자인 강승현 극지연구소 연구원은 먼저 남극 활동에서 가져야 할 방문자들의 자세를 아문센과 스콧의 사례를 통해 말했다. 1910년대 노르웨이 탐험과 로얄 아문센과 영국 해군대령 로버트 스콧은 남극점 정복을 위해 당시 남극 환경에 맞춘 아문센은 남극점을 먼저 정복했다. 하지만 극지를 고려하지 않은 스콧은 결국 패배하고 남극에서 사망했다.

강승현 연구원은 “아문센은 환경을 이해하고 이에 맞춰 적응하려는 태도를 갖추며 실용성과 협력, 준비와 상황에 따른 유연함의 조화를 가져 남극점 정복에 성공했다”며 “지금의 남극 정책과 탐험, 연구도 아문센의 탐험 정신처럼 남극 환경을 이해를 바탕으로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표 중 큰 관심을 끌은 또다른 주제는 ‘남극의 외래종 유입’이다. 강승연 연구원은 남극환경보호위원회(CEP) 한국 대표로 최근 남극에서 발견되는 ‘겨울각다귀’가 북미 지역에서 유래했음을 밝혔다. 외래종에 의한 남극생태계 교란 실태를 규명하는 등 풍부한 남극 생태계 관련 연구 경력을 갖고 있다.

강승현 연구원의 말처럼 남극 외래종 유입은 오래 전부터 큰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부터 1월, 본지 남극특별취재팀이 방문한 당시, 남극세종과학기지는 외래종 유입 방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입남극 전부터 철저한 소독, 물자 관리가 이뤄졌다.

호주 모나쉬대학교 생물학과와 라트로브대학교 환경 및 유전학과 공동연구팀이 논문에서 밝힌 외래종 서식지는 총 36곳이며, 남극 대륙의 외곽을 중심으로 발견된 것을 알 수 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그럼에도 남극 외래종 유입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호주 모나쉬대학교 생물학과와 라트로브대학교 환경 및 유전학과 공동연구팀이 2021년 3월부터 2023년 1월까지 남극 대륙과 남극해 섬에서 발견된 외래종은 총 36개 서식지에서 3,066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 현존하는 외래종은 약 2,390건이며, 멸종되거나 생존 상태가 불확실한 것은 676건이다.

우리나라 남극세종과학기지 역시 외래종의 위협을 피해가지 못했다. 2010년대 초반 세종기지에서 단발적 발생에 ‘각다귀’가 2015년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에 당시 하계 연구팀은 각다귀들의 서식지를 추적, 따뜻한 물이 연중 상시하는 오배수 시설이 주요 외래종 서식지임을 확인했다.

이후 세종기지는 △오배수 완전 방류 후 청소 △Trap 설치 등 꾸준한 방역 노력을 지속해 2020년 각다귀 박멸에 성공했다. 이는 현재 남극에서 유일하게 외래종 박멸에 성공한 기지 성과다. 국제남극조약 당사국회의(ATCM)와 남극연구기지운영국장회의(COMNAP) 등 국제 협의체에서 이를 우수 방역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 천연자원의 창고 ‘남극’… 얼음이 새로운 자원이 된다

남극은 극한의 환경이지만 여러 자원을 품은 보물창고와도 같다. 펭귄, 스쿠아, 물범 등 다양한 생물자원뿐만 아니라 빙하 깊숙이 숨겨진 미생물, 천연자원들은 남극 과학자들을 매혹한다. 극지연구소 과학자들 역시 이 남극의 자원을 연구하기 위해 매년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로 향한다.

행사 발표자로 나선 도학원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대표적인 극지 자원 연구자 중 한 명이다. 포럼에서는 남극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생명을 보호하는 특수한 단백질이 어떻게 생명공학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지를 대중들에게 알렸다. 남극 연구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줬다.

(왼쪽부터) 도학원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민준홍 37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 지질대원, 강승현 극지연구소 연구원,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장(사회자)./ 박설민 기자

이날 도학원 책임연구원이 대중들에게 소개한 기술은 남극의 ‘얼음결합 단백질(IBP, Ice-Binding Protein)’이다. 이는 문자 그대로 얼음과 결합하는 단백질이다. 주로 남극과 북극 등 극지에서 발견되는 물고기들의 ‘부동 단백질(antifreeze protein)’이 얼음결합 단백질의 대표적 예다.

이때 얼음결합 단백질은 얼음표면과 결합, 얼음이 성장할 때 특정방향으로만 성장하도록 방해한다. 때문에 얼음결합 단백질이 달라붙은 얼음은 두 개의 피라미드를 이어붙인 ‘삼각형 이중뿔(Bipyramidal)’ 형태의 특이한 구조로 얼어붙는다.

독특한 특성 덕분에 얼음결합 단백질은 극지 생물들에게 여러 기능으로 사용된다. 남극의 물고기들은 혈액 속에 고농도로 존재하는 얼음결합 단백질 덕분에 추위에서 혈관 세포 파열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해빙 밑에 서식하는 극지 미생물들은 얼음결합 단백질을 이용, 빙하 표면에 몸을 부착해 살아간다.

이 같은 얼음결합 단백질의 특성을 이용, 도학원 책임연구원은 신개념 단백질 정제 방법인 ‘얼음 친화 정제시스템’을 개발했다. 북극 영구동토에서 찾은 미생물에서 유래한 ‘DUF3494’ 계열 얼음결합 단백질을 활용해 고순도 단백질 회수에 성공한 것이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약 87%의 단백질 정제가 가능하다고 한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우리는 왜 남극을 연구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연구의 사명이 지구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지구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빠르고 극적으로 일어나는 남극은 이제 연구 대상을 넘어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창”이라고 말했다./ 박설민 기자

아울러 지난해부터는 LG전자와 친환경 신소재 개발 연구도 진행 중이다. LG전자가 자체 개발한 항균 기능성 유리 소재, 수용성 유리 소재를 도학원 책임연구원이 극지 현장에서 성능 시험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올해 1월 남극을 방문한 도학원 책임연구원은 LG전자의 친환경 기능성 세재 성능 테스트를 진행했다. 캡슐 형태 샘플을 이용, 세탁 능력과 세제가 남극 미생물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했다.

도학원 책임연구원은 “LG전자가 만든 친환경 소재들이 있는데 이를 남극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시험하는 것이 주요 연구였다”며 “친환경 세제가 만약 극지의 해안으로 흘러들었을 때 그곳의 생물종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비교 실험을 진행했고 이에 대한 내용을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우리는 왜 남극을 연구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연구의 사명이 지구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지구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빠르고 극적으로 일어나는 남극은 이제 연구 대상을 넘어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