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을 가다②] ‘12.3 비상계엄’이 터지다
“일이 잘 풀린다면 그것이 가장 위험한 때다.”
(Le plus grand danger survient au moment de la victoire.)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시사위크=박설민·김두완 기자 ‘모든 일이 너무 잘 풀려간다면 조심하라’는 이야기는 자주 듣던 말이었다. 이번 남극 취재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복잡한 서류 작업이 있었지만 모두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남극 프로젝트는 크고 작은 암초를 만나게 됐다. 한국에서 남극으로의 출발까지,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순간들을 되짚어 봤다.
◇ ‘전자여행허가제(ESTA)’ 발급 소동
지난해 11월 14일, 극지안전훈련을 마치고 부산에서 서울로 복귀하는 길, 팀장과 제출이 완료된 서류를 체크했다. 누락된 것은 없었다. 비행기티켓도 이미 예매가 끝난 상태였다. 기자의 경우, 중간 경유지인 미국 애틀랜타에서 입국에 필요한 ‘전자여행허가제(ESTA)’ 발급도 완료한 상태였다. 남극 관문이자 최종 목적지인 칠레에서는 비자가 필요 없었다.
다만 팀장은 아직 비자(ESTA) 신청 전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미국 애틀랜타공항으로 출발하는 날짜는 12월 11일. 아직 20일 넘게 여유가 있었지만 미국 관세국경보호청과 외교부를 거쳐 허가가 되는 만큼 이 기간 내에 문제 없이 발급될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ESTA 발급 신청을 서둘던 팀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보다 발급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팀장의 결제 내역을 보니 300달러, 한화 약 40만원의 비용이 결제돼 있었다. 당시 기준 비자 발급 금액은 21달러로, 약 3만원 수준이었다. 그보다 13배 비싼 비용을 결제한 것이다.
확인 결과, 이는 ESTA 및 비자 발급 대행 사이트였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비싼 가격에 발급받도록 유도하는 업체였다. 홈페이지를 미국 관세국경보호청과 유사하게 꾸며 ESTA 발급을 처음 받는 사람은 혼동하기 매우 쉬워 보였다. 심지어 미리 ESTA를 발급받은 기자조차 ‘한국용 홈페이지인가?’라고 잠시 헷갈릴 정도였다.
이에 바로 환불 요청 이메일을 작성해 업체 측에 전송했다. 만약 제대로 환불하지 않을 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경한 내용이었다. 다행히 이틀 후 업체로부터 전액환불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ESTA 발급 피해 관련 상담이 전년 대비 4.7배 증가할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이를 우리가 직접 겪게 될 줄은 몰랐다.
◇ 남극행 좌초 위기?!
우여곡절을 겪고 마침내 남극으로 출발할 2024년 12월이 됐다. 이제 서류도, 훈련도, ESTA도, 항공편도 모두 준비를 마쳤다. 취재에 필요한 카메라 및 영상장비와 극지연구소에서 받은 극지연구원용 피복도 준비됐다. 태극기마크와 ‘극지연구소’라고 써진 엠블럼이 부착된 피복을 입으니 남극에 간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극행 최종 준비를 하던 12월 3일 오후 10시 20분경, 전국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12.3 비상계엄’이었다. 한 달간 세종기지에서 쓸 물건을 캐리어에 담던 중,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발표가 TV로 송출되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머릿속엔 온갖 생각들이 스쳤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거지?’, ‘남극행은 취소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언론사 기자이기에 일단 업무가 우선이었다. 정치부 소속인 팀장은 국회 현장으로 이미 발 빠르게 이동한 상태였다. 과학부 소속인 기자에겐 상황을 보면서 실시간 기사 타이핑 및 전송을 위한 대기 업무가 내려졌다. TV에선 국회에 군용헬기와 계엄군이 들이닥쳤단 소식이 전해졌다.
긴장 속, 시간은 흘러 12월 4일 새벽이 됐다. 오전 1시 1분,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이후 약 3시간이 지난 오전 4시 27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의 요청대로 비상계엄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불현듯 스친 생각.
‘남극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까.’
국회에 있던 팀장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팀장은 메신저를 통해 “야, 다시 남극 갈 짐 싸라”며 농담을 보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밤을 새우고 오전 9시에 사무실로 출근했다. 사무실로 복귀한 취재팀 모두 눈가가 퀭했다. 하지만 표정엔 평안함이 스쳤다. 1년 가까이 준비한 남극행이 무산되지 않은 기쁨, 큰일이 벌어지진 않았다는 안도였다. 이날 오전 10시 극지연구소 측으로부터 ‘남극행은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젠 정말 큰일 없이 남극으로 가길 기도했다.
◇ 드디어 ‘애틀랜타행’ 비행기에 탑승하다
12.3 계엄 이후, 나라가 혼란스럽긴 했지만 남극행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마침내 12월 11일 새벽 6시, 미국 애틀랜타공항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회사 동료들이 특별취재팀을 배웅하기 위해 와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공항 내 한식당에서 회사 동료들과 함께 김치찌개로 아침식사를 했다. 당분간 한식을 먹기 힘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나중에 남극에 도착해 알게 된 것은, 세종기지 월동대 조리대원 덕분에 한식 걱정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식사를 마치고 마침내 남극행의 첫 관문인 애틀랜타행 항공기 탑승 시간이 다가왔다. 동료들의 응원과 격려가 이어졌다. ‘진짜 남극에 가는 게 맞느냐’며 신기해 하는 동료기자도 있었다. 취재팀 역시 믿기지 않았다. 사실, 그간의 흔한 지방취재나 해외출장 정도의 느낌 정도였다.
그렇게 인천공항에서 출국 기념촬영을 마친 후, 애틀랜타행 항공기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 이 비행기를 타면 이제 약 11시간의 비행을 거쳐 미국 애틀랜타에 도착하게 될 것이었다. 이후 애틀랜타에서 산티아고를 거쳐 총 40시간의 비행을 마치면 남극 입장 관문인 칠레 ‘푼타아레나스’에 입성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의 끝’을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