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액 기준 없이 증액 추진… 국힘, ‘깜깜이 예산’ 반발

2025-11-24     김두완 기자
박형수 의원 등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내년도 예산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김두완 기자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내년도 예산 심사를 두고 여야의 줄다리기가 거세지고 있다. “삭감 규모도 안 정한 채 증액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국민의힘의 비판이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2026년 예산안 심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국회가 감액 규모를 확정하지 못한 채 증액 심사부터 진행하면서 예산 검토 과정이 사실상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이를 “절차의 근간이 흔들리는 깜깜이 예산 심사”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예산안 심사는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채 교착상태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 ‘진짜 민생예산’ 내세운 국힘

박형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는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예산 증액 논의는 감액 범위가 확정된 뒤에 이뤄지는 것이 원칙인데 올해는 그 순서가 뒤집혀 있다”며 “감액 기준이 없으면 무엇을 얼마나 증액할지 판단할 근거가 없어 심사의 의미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산 심사에서는 부처 요구와 정당 간 의견이 충돌할 때 결론 대신 보류 처리가 반복됐다. 국민의힘은 이를 두고 “개별 항목의 타당성을 따지기는커녕 정치적 힘겨루기 속에서 예산(안)이 보류로 쌓여가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강승규 국민의힘 예결위 의원도 “증액 논의가 먼저 이뤄지면 국회가 정부 제출 자료에 끌려가는 구조가 된다”며 “정보 비대칭 속에서 예산이 확정되면 국민 입장에서는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심사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착의 배경에는 절차 문제뿐 아니라 정책·정치·프레임 경쟁이 얽힌 구조적 갈등이 자리한다. 김대식 국민의힘 예결위 의원은 심사 지연 배경에 대해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자는 주장과 감액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부딪히는 과정에서 대립이 반복되고 결국 결론을 뒤로 미루며 보류로 쌓여간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특활비, 특정 대북 예산 등 민감한 항목들이 보류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재정건전성 문제 역시 거센 공방의 한 축이다. 최형두 국민의힘 예결위 의원은 “정부가 내년 예산 마련을 위해 약 100조원 규모의 국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며 “부채를 늘려가며 예산을 확대하는 방식은 금리·물가·환율 불안을 키우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넘길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의 금리 급등, 프랑스 신용등급 하락 등이 보여주듯 확장 재정이 금융시장 불안을 촉발하고 있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 예결위 의원들은 이날(24일) 백브리핑을 통해 "예산 삭감 규모도 안 정한 채 증액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정부여당에 불필요한 예산 삭감과 '진짜 예산' 증액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 사진=김두완 기자 

AI 관련 예산은 올해 예산 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정부는 내년 AI 예산을 대폭 확대해 행정·교육·산업·문화 전반으로 확산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국민의힘은 상당수 사업이 “기존 사업 명칭에 AI를 붙인 것에 불과하다”라고 보고 있다.

최형두 의원은 “AI 예산은 GPU·NPU 등 △연산 인프라 △학습 데이터 생산 △핵심 인재 양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진짜 AI’”라며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사업은 ‘무늬만 AI’ 예산”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AI가 국가 전반의 혁신 과제라는 판단 아래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타협이 쉽지 않은 전망이다.

대북·외교 안보 예산도 맞서는 영역이다. 최 의원은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5,000억원 넘는 대북 사업 예산을 기계적으로 증액하는 것은 결국 빚을 내서 충당하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대북·외교 안보 예산의 경우 여당이 안보 환경을 고려해 감액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조정이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예산안의 심사 지연은 단순히 규모를 두고 벌이는 숫자 싸움이 아니라 △재정 기조 방향 △국가전략 산업투자 △대외정책 메시지 △지선을 앞둔 정치 셈법 등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는 양상으로 보인다. 감액 기준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증액 협상도 구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주 논의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국회 안팎에서 나온다.

박형수 간사는 “예산은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삶”이라며 “정쟁이 아니라 검증으로 예산을 구성할 수 있도록 협상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야가 ‘민생 재정 확대’와 ‘재정건전성’이라는 각각의 명분을 앞세우고 있어 접점 찾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산 심사는 국가 살림을 정하는 절차이면서, 동시에 지방선거를 앞둔 정당들이 정책 방향과 가치관을 유권자에게 드러내는 정치 무대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예산 정국의 관건은 단순한 예산 증감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국가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으로 귀결될 전망이다.